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 정세균 국회의장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져 갔다.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2017년 11월 8일 국회 본회의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정 연설 시각이 30분 넘게 지나갔다. 정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원고를 손보는 것 같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양해를 구하고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뒤늦게 홀연히 나타난 트럼프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거침없는 연설을 시작했다. 훗날 이유가 밝혀졌다. 그 시간에 미국 주지사 보궐선거 선거 예측 방송을 보느라고 늦었다. 3곳의 선거에서 공화당은 참패했다. 국내정치가 우선인 트럼프에게는 외교적 결례가 문제가 아니라 CNN 뉴스를 더 보는 게 중요했다.



지난 2월 27일 저녁만 하더라도 하노이에서 만난 북한과 미국의 정상 간에는 이미 합의문 작성이 끝나 있었고, 더 이상 회담의 걸림돌도 없었다. 바로 시간에 워싱턴에서는 마이클 코언 변호사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28일 날이 밝으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정상회담장에 들어 선 트럼프에게 청문회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트럼프는 “서두르지 않겠다”며 마치 정상회담을 해태하는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에게서 또 ‘주의력 결핍장애’ 증세가 나타났다. 더 이상한 건 전날 만찬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존 볼튼 안보보좌관이 회담장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해버린 것이다. 한 번도 북한과의 협상에 나선 적 없는 볼튼은 분명 이 회담장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북한 핵에 대해 리비아식 해결(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을 주장하는 그는 북한에게 스포일러, 즉 방해자였다.



각본에 없는 배우의 출현은 스토리 전체를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회담 전까지 미국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단순한 핵 시설 폐기가 아니라 미국의 과학자들이 모든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사찰에 버금가는 활동이 보장된다면 상당한 진전이다. 이에 미국은 비상한 관심을 보여 왔고, 그것이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핵심 이유였다. 그런데 볼튼의 회담 출현 이후 정상회담을 추동해 온 논리적 맥락이 무너져버렸다. 북한 핵 개발의 상징인 영변은 아무 것도 아니고 다른 시설에 대한 의혹이 부각된다. 이상한 일 아닌가? 그간 공든 논의가 무색해지고 새로운 사안이 두 지도자를 넘어지게 한 돌부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북한의 행태는 더더욱 괴이하다. “유엔 안보리의 5개 대북 제재 중에 민생과 관련된 부분을 해제해 달라”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유엔의 대북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제되는 것이 아니고 안보리 상임 이사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제재 해제를 트럼프에게 요구할 일은 아니고 이후 유엔 안보리가 합리적인 토의를 하도록 “지원해 달라”고 부탁만 하면 그만이다. 사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유예와 이후 남북 경협을 촉진하는 역할을 문재인 대통령은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걸 잘 아는 김정은 위원장이 왜 하노이에서 트럼프보고 떼를 썼을까?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경제제재 해제보다 북한 체제 안전을 도모하는 종전선언이나 적대행위 중단, 더 나아가 양국관계 정상화를 요구했어야 한다. 그게 훨씬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서는 애초 예상과 달리 경제제재 문제가 중심 의제로 부각되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건 김정은 식 주의력 결핍 장애가 아닐까? 66시간 기차 여행의 후유증일지 모르는 이상한 행동이니 말이다. 이런 해괴한 풍경은 의외로 국제정치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감정과 충동과 우연의 영역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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