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 지난 2월 20일 국민권익위원회(여권에서 국가청렴위원회로 변경 추진)가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사례를 보면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공공기관 고위직의 자녀와 친인척들을 시험조차 치루지 않고 계약직으로 채용하였다가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어떤 임직원 자녀는 서류심사와 필기시험에서 낮은 순위였는데도 면접 점수를 높게 주어 합격시켰다. 이른바 ‘고용세습’이 자행된 것이다. 심지어 만 29세 이하 청년층에게는 10%의 가산점을 줘야 하는 규정까지 어겨가면서 합격자 순위를 바꿔치기 하였다. 이 밖에도 비리실태는 공직윤리 조건 여하를 떠나 일반상식을 뛰어 넘었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에서는 2012년 4월 특정 업무직 채용 때 조카를 상대로 삼촌이 면접위원으로 참여하였고, 다른 병원에서는 같은 해 3월 응시자 부모의 친구인 직원이 면접위원을 맡았다. 특히 전수조사 결과 국공립병원에서 발생한 채용비리는 11건이나 수사가 의뢰될 정도로 많았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지난해 2월, 간부의 지시에 따라 비상시 업무종사자 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였다. 경북대병원에서는 2014년 2월, 응시자격으로 의료관련 자격증을 요구하였지만 자격증이 없는 직원의 자매, 조카, 자녀 등에게 응시자격을 부여하여 최종합격 시켰다. 경기도 의료원에서는 지난 5월, 내부 직원만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를 통하여 직원 자녀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직원 및 그 자녀와 친분이 있는 직원을 면접위원으로 참여시켜 다른 응시자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런가하면 전쟁기념사업회(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념하는 사업회가 있다니?)에서는 2016년 3월, 서류심사 결과 면접대상자로 최종 1명을 추천하였지만 기관장 결재과정에서 나이가 어려 이직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아니 되는 이유’를 내세워 면접도 하지 않고 탈락시켰다. 한국기계연구원에서는 2016년 정규직 채용시험 시 합격자 추천 순위를 조작했다. 공영홈쇼핑에서는 2015년 고위직 자녀를 비롯, 6명을 시험 없이 단기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나중에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국토정보공사에서는 2016년 3월, 자격 미달의 직원 자녀를 불합격 처리한 두 달 후 서류면접 심사를 거쳐 최종 합격시켰다. 경기신용보증재단에서는 2015년 서류전형 배점을 조정하는 수법으로 직원 자녀를 최종합격 처리하였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는 2017년 5월, 용역업체 관리를 총괄하는 소장이 본인이 관리하는 용역업체에 본인 동생과 지인을 채용토록 청탁하였다.

기회의 평등성, 공정성, 형평성 등을 생명으로 하여야 하는 공공기관(정부기관의 공무를 수행하는 관공서, 공기업, 준 정부기관)에서 이렇듯 채용비리가 끊임없이 자행되어 왔다. 비리종합백화점 전시회를 보는 것 같다. 천태만상이다. 상상을 초월한다. 무정부상태의 황량함을 느끼게 한다. 신문 사설의 지적처럼 청년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만행인 것이다. 국가가 나이를 아무리 먹더라도 철이 들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의 자리를 사인의 고용직으로 둔갑시키는 반 공공행위를 자행하고 있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혹시 국가가 비리 DNA를 가지고 탄생된 것이 아닌가하는 한탄을 자아내게 한다.

사후약방문식(死後藥方文式) 처방이지만 늦게나마 정부가 이러한 뿌리 깊은 채용비리를 근절시키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단다. 채용비리자에 대한 징계감경을 금지하고, 일정기간 승진과 인사⦁감사 업무보직을 제한하며, 채용절차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가족채용 특혜 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며, 공공계약 체결 시 시민간기업체가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부정한 취업특혜를 제공하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국가⦁지방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매우 미미하고 소극적이다. 비리척결의 당위성에 한 참 미흡하다.


채용비리는 ‘기회평등’이라는 헌법정신을 짓밟는 중대한 범죄이다. 정의사회를 붕괴시키는 만행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상실감과 패배감을, 국민들 간에는 위화감을 조성케 하는 비정상의 악행이다.

정의가 실종된 국가나 사회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공공성, 공익성 등을 생명으로 하여야할 공공기관이 공직을 사유재산처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국기를 뒤흔드는 반국가적 행위인 것이다.

비리채용행위는 국가를 재건한다는 관점에서 단호하고 철저하게 응징하여야 한다. 일벌백계하여야 한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근절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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