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정 음성교육지원청행복교육지원센터 파견교사

고윤정 <음성교육지원청행복교육지원센터 파견교사>

(동양일보)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허전했던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성큼 다가온다. 봄이 오면 새 학년·새 학기가 시작되는 학교.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함께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다.

대한민국 모든 8세 어린이들이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입학하던 그 때, 초등~학교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1979년도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로 입학해 유일하게 생각나는 추억 하나는 초등학교의 가을운동회였다. 그때는 초등학교마다 체육복과 모자를 준비하고 운동회에 참여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때만의 체육복 분위기가 있었다. 생애 최초의 체육복은 가을운동회를 처음 맞는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해줬다.

그 들뜸도 잠시, 나의 체육복에는 함정이 있었다. 고무줄처럼 쫀쫀하게 늘어날 것 같았던 체육복은 큼지막한 내 머리통을 받아들여주질 않았다. 그 광경을 목격한 엄마와 이모가 함께 체육복 목둘레 시보리 부분을 양손으로 꽉 쥐고 최대한 늘려보려 했지만, 내 머리통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쏙 머리만 통과하면 위풍당당한 국민학교 1학년 어린이의 포스를 보여줄 수 있었는데, 야속한 체육복~

목둘레 시보리 부분을 얼마나 잡아 당겼을까? 엄마는 체육복을 던져 놓고, 까만 머리 긁적이는 나와 체육복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시다가 해결책을 내 놓으셨다. 체육복 목둘레 한 곳을 정하여 가슴방향으로 선을 그으시고, 그 선을 따라 가위로 뚝딱 자르셨다. ‘헐~~’. 그리고 어디선가 구해오신 쟈크(일명 지퍼)를 뚝딱 달아주셨다. 처음 맞는 가을운동회 준비부터 어렵게 했던 나의 체육복은 그렇게 가슴팍 언저리에 길을 내주고, 신기술의 쟈크가 자리 잡았다. 그 쟈크(지퍼)는 온전히 나의 머리둘레를 순순히 받아들여 줬다. 마치 온갖 고생 다하고 마을 잔치로 달려가던 콩쥐같이, 그렇게 나는 가을운동회로 달려갔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을운동회에 오셨던 수많은 부모님들과 학생들은 시력이 참 좋았나 보다. 내 체육복 왼쪽 어깨 위에 길을 낸 쟈크 흔적을 한 눈에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어린 나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물들었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체육복의 어깨 쪽만 바라보는 듯 했다. 그러다가 키득키득 하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즐겁고 신났을 초등학교 1학년 첫 가을운동회는 쟈크 달린 체육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1학년 꼬맹이의 서글픔으로만 저장된 것 같다.

1980년대를 강타했던 유명브랜드 뱅뱅 잠바(어렵게 장만해주신)의 기억도 있다. 중학교 1학년 초겨울, 석탄난로를 가까이 하다가 한쪽 소매를 홀라당 태워버린 나를 속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엄마는 또 다시 가위를 드셨다. 놀라운 솜씨로 뱅뱅 잠바의 양쪽 소매위에 천을 덧씌워 세상에 하나 밖에 없을 새로운 뱅뱅 잠바로 만들어 버리셨다. 토시를 늘 끼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내 생애 최초의 뱅뱅 잠바도 또 하나의 추억이다.

엄마의 기술은 시시때때로 당황하는 딸내미의 삶에 쑥쑥 들어왔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러 나이 50을 앞둔 나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우리 엄마 정말 센스쟁이셨다’라는 생각을 한다.

살포시 입가의 미소를 띠우게 했던 그 때의 일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오로지 자식 잘 되기만을 바랐던 수많은 세상의 엄마들. 덧대주고 이어주고 다시 이끌어주셨던 엄마들의 마음으로 우리들은 자라고 자라난다. 곧 다가올 봄, 대한민국 곳곳에 사랑스러운 그녀들의 기술이 들어올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이라는 바탕으로, 소망이라는 기대로, 우리의 자녀들을 아름답게 키워내 줄 그 무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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