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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호사바치
풍향계/ 호사바치
  • 동양일보
  • 승인 2019.03.05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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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남의 것’ 할 때의 ‘남’ 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자기 외의 다른 사람’ 을 말하니까 ’남의 것‘ 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 즉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의 것’ 이다.

그런데 ‘남의 나이’ 는 ‘환갑이 지난 뒤의 나이’를 말한다. 지난날엔 환갑이 지나 먹는 나이는 내 나이가 아니라 덤으로 다른 사람의 나이를 먹는 거라고 생각해서 환갑까지 살면 꽤 오래 사는 거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리고 ‘남의 달’ 하면 ‘임신부가 해산할 달로 치는 그 다음 달’을 이른다. 그래서 ‘남의 달 잡다’ 하면 ‘아이를 예정한 달을 지나 그 다음 달에 낳게 된다.’ 라는 말이다.

만수 씨가 남의 나이 즉 예순 둘에 또 여식을 보았다. 4년 전에 전 부인이 딸만 넷을 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졸지에 홀아비가 되었는데, 이때는 네 딸들이 전부 출가한 때라 또한 뒤늦게 천애의 고아신세가 되었다. 하여 한 1년6개월을 홀로 살다보니 때를 해결하는 것도 그러려니와 의지할 데 없는 초라한 모습이 청승스럽게 보였던지 출가한 딸자식들이 권하고 동네 또래들의 울력으로 59세의 마지막달에 새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동네에서 이왕이면 늦게나마 아들자식 하나라도 보라면서, 13세 짜리 아들이 동네 방죽에서 익사한 이웃마을 39세의 과부를 어렵사리 물색해 주었는데 또 딸자식을 본 것이다. 그것도 ‘남의 달’에.

“만수 말여, 그 사람 똥도 내버리기 아까운 사람 아녀, 그런 고진인데 왜 삼신할매한테 밉보여 또 딸이란 말인가!” “거야 인력으루 되나 다 타고 난 팔잔 걸.” “내 말 안 들어서 그려, 기러기 똥을 먹으면 아들 낳는다고 내 몇 번을 일렀건만!” “이 사람 또 허튼소리 하고 있네. 기러기 똥을 어디서 어떻게 구햐. 구해 주지는 않구 말루만이지.” “너무 나무라지 마, 이 사람두 하두 딱해서 하는 소리여. 그나저나 뒤늦게 본 귀한 지식이니 인제 잘 기르는 수밖에 없지 뭐.” “그려, 그러지 않어두 본인두, 팔자가 여기까지라면서, 이 나이에 뭘 또 더 낳겠느냐구, 또 낳는다 해두 사내애라는 보장두 없구, 인제 얘가 끝이라구 하더라구.”

이러한 애라 만수 씨는 오냐오냐 하면서 애지중지하며 보살폈다. 그런데 이 늦둥이가 본마음은 양순한 것 같은데 성질이 여간 까탈진 게 아니다. 커가면서 특히 옷에 집착을 보인다. 행여 색상이 호화롭지 않거나 몸에 맞지 않으면 질색이다. “나 이런 우중충하고 헐렁헐렁한 것 싫어.” “검소해야지 비싸빠지고 색상만 호화찬란하면 뭣 하냐, 그리구 이래야 내년에두 입구 후년에두 입지!” “싫단 말야. 나 그런 거 안 입어!” 하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그만이다.

이러 하니 동네 아낙들이 모이면 한마디씩이다. “그 집 딸래미 옷 바라지하다 기둥뿌리 빠지겄어.” “그러니 워떡햐. 뒤늦게 얻은 딸래민데. 맘껏 해줘야지 뭐.” “애는 심성두 괜찮구, 생긴 게 밉상두 아니구, 옷 입은 태두 나잖여. 그리구 제 반에선 성적두 중상이랴, 그러면 됐지 옷값이 대수여. 나 같어두 적극적으루 밀어주겄다.” “근데 우리 시어머님이 그러는데, 날 때부터 그런 호사바치가 있다는겨.” “호사바치?” “그려, 몸치장을 호사하게 하는 사람 말여.” “맞어, 분수에 맞지 않게 호화롭게 사치하는 사람이 있지. 근데 얘는 뭐 그렇게까지 사치스럽진 않잖여?” “하지만 제집형편이나 우리 마을 같은 시골에선 호사바친 호사바치지 뭐.”

이 호사바치가 남인을 맞았다. 옛날에 ‘남인죵’ 하면 ‘사내종’을 말했듯이 ‘남인을 맞았다’는 건. ‘사내를 맞았다’는 말로 즉 ‘시집을 갔다’라는 말이다. 이러한 말을 아직도 쓰고 있는 마을인데, 이 호사바치가 남편 될 사내에게, ‘나 결혼식 날 입을 예복은 최신식 호화로운 것으로 해야 된다’ 고 다짐을 받았다니 동네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파격적인 일이었겠는가?

“아니 호사바치가 제 엄마 칠순에 왔다구?” “암 와야지요. 제 엄마하구 죽은 제 아버지가 얼마나 저 뒷바라지 하느라구 애썼는데요.” “저가 뭐여 저가. 인제 중 부인이나 된 애한테.” “그러는 당신은 애가 뭐예유 애가?” “참 그런가, 동네송아지 생각만 했구만! 그나저나 옷 빼 입는 건 여전햐. 도회지사람 뺨쳐. 시집형편이 괜찮은가 부지?” “괜찮어서 그래유 원래 태생이 그런 걸. 보시우, 우리 집이 그 호사바치 친정보다 살기가 낫다구 하지만 애들한테는 늘 꾀죄죄한 옷만 입혔잖우?” “그려, 그려, 그런 것 보면 다 그렇게 그렇게 타고 나나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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