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이용구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동양일보) 온 세상 하늘과 땅이 하얗게 내린 눈으로 옷을 갈아입었던 내 나이 다섯 살 그 겨울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골에서 ‘감성’(지명)이란 곳 신작로가 있는 길(약 3㎞)까지 지금보다 반쪽인 길을 걸어서 즐겁게 도착했다.

점방(구멍가게)에서 완행버스 차표를 1장 끊고 나는 덤으로 탔다. 대전 대흥동 주차장에 내리면 걸어서, 어린 마음에도 어른을 생각하는 마음에 마치 인도견이나 된 듯이 어른 앞에서 재롱을 떨며 길잡이 노릇을 했었다.

볼일이 끝나고 ‘부자유친’의 정을 수놓으며 대전 목척교 냄비우동집에 들러 대패 밥에 쌓여진 찐빵 4개 중 설탕에 묻혀 맛있게 1개를 먹고 3개는 대패 밥으로 싸서 봉창에 넣고 나면 어머니, 삼촌, 고모들 모습을 상기하며 배는 부르고 등이 따습기까지 했다.

신도극장에서 중국 무술영화 ‘7인의 협객’을 어찌도 재미있게 봤는지, 스팀도 들어오지 않는 극장 안에서 아버지가 벗어주신 오버코트의 따스함이 조그마한 나의 목을 감싸서 추운 줄도 모르고 떨면서도 행복해했다.

아버지.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타임머신 타고 그때 그 시절 시공으로 달려가 그 어리광으로 여쭤보고 싶은 부자자효의 자문자답으로 오늘도 컴퓨터의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머릿속에 가득한 여명을 맞이한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시대가 지금 몇 살이라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이럴 것이다.

네 살, 아버지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일곱 살, 아버지는 아는 것이 많다. 여덟 살, 아버지와 선생님은 누가 더 높을까? 열두 살,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많다. 열네 살, 아버지 세대 차이 나요. 스물다섯 살,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서른 살,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마흔 살, 여보,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 봅시다. 쉰 살,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셨어. 예순 살,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란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짙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되고 만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 소리로 기도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마을의 당산나무 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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