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심옥주 전 부산대교수가 펴낸 책 제목이다. 함께 조국을 지켜내고 버텨냈지만 조명받지 못하고 역사의 그림자 속에 갇혀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3·1운동이 일어난지 올해로 100년,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여성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만 기억하는 것일까? 함께 투쟁했던 수많은 조선의 여성들은 왜 기억과 기록에서 사라졌을까? 책 제목에 “나는 여성이고”를 붙인 의도가 공감되는 현실이다.

지난 삼일절, 정부는 여성독립운동가 75명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포상 역사상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여성이 서훈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서훈으로 여성독립운동가는 432명으로 늘어났다. 감동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여성서훈자는 전체 서훈자 1만5511명 중 3% 미만이다.

3·1운동은 당시 인구 1680만명 중에서 연 인원 200만명 이상이 독립 시위에 참여한, 세계혁명사에 보기 드문 현상이다. 당시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성 차이를 넘어서 똑같이 나섰다. 누구의 엄마이자 아내로서가 아니라, 남성독립운동가의 조력자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자로서 자발적으로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독립을 위해 뛰어들었던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일에 소홀했다.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90년대 이전에는 남성위주의 보훈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여성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발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국가가 30년 동안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열심히 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가부장제의 남성중심사회에서 사회참여와 국권회복 투쟁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본 경찰관서와 주재소의 순사 헌병들의 천인무도한 여성학살과 강간이 도처에서 자행돼 여성들이 이에 맞서 자위의 깃발을 들고 일어난 것이다. 또 한국민족을 말종시키기 위해 일본 남자에게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결혼 또는 첩으로 보낸다는 소문도 나돌면서 여성들은 시골장날 장바구니를 던지고 만세시위에 나선 것이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여성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대한독립여자선언’을 필두로 도쿄 2·8독립선언서에 참여한 여학생들, ‘여학생 파리강화회의 청원서’, ‘열강국 부인회와 윌슨 미국대통령 부인에게 청원서’, ‘구국부인회 발기문’, ‘송죽결사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조선애국부인회’등 많은 여성들이 각종 비밀 단체를 조직하여 국제기구에 청원하고 일제와 부단하게 싸웠다. 이밖에도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단체인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해 활동하거나, 한국광복군으로 직접 투쟁 일선에 나서고, 군자금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하고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에 깊숙이 참여했다.

당시 여성들의 활동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인도의 초대 수상이 된 네루는 항영(抗英)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너도 조선 소녀들을 본받으라”고 자신의 딸에게 편지를 썼을까. <세계사 편력>에 나오는 일화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남성에 비해 더 힘이 들었던 데는 고문의 수위나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여성들에게는 성고문이 가해졌다. 여성수감자들은 성고문의 후유증으로 불임 등 신체적인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평생 겪어야 했다.

이렇게 맹렬히 싸운 여성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충북출신 여성독립운동가들도 있어서 자랑스럽다. △청주의 오건해, 신순호 모녀 △진천의 임수명 △영동의 박재복 △청주의 이국영 △충주의 어윤희, 윤희순이 바로 그들이다. 이 분들 외에도 이름없는 들꽃처럼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 갔지만 결코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곁을 지켜온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 모두가 독립운동의 중심이고 대한민국 광복을 이끈 주역들이다. 오는 8월 충북도는 충북미래여성플라자에 충북출신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세운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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