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교사 제천 세명고

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동양일보) 우연히 펼친 시집에서 제 시선을 사로잡은 시구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다. 정호승의 ‘꾸중’이라는 시에 나온 한 구절이다.

어머니께서 자식에게 한 최초의 꾸중은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는 ‘가치’에 대한 철학이다.

최소한 대여섯 살은 되었을 아들을 키우면서 혼낼 일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하지만 최초가 가장 중요해야만 한다는 어머님의 단호함과 기다림, 그리고 신중함이 시의 장면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꾸중이 가르침이 되는 순간의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는 어머님의 깊은 내공도 숨은 듯 하지만 분명하게 보인다.

어쩌면 어머님은 ‘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라는 대사를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미리부터 다듬고 다듬어 보석처럼 잘 간직해 두셨다가 지금이 그 순간이다 싶어 내놓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겨울, ‘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의 저자 김태현 선생님께서 주최하신 ‘소소한 책방’ 연수에 다녀왔다.

그 때 저희에게 주어진 미션 중 하나가 망원동 책방을 탐방하다가 포착된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기였다.

지방에 살던 제게 망원동 책방 거리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그런데 미션을 위해 모두가 흩어지는 순간, 도로 위의 큼지막한 ‘통행금지’라는 글씨가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 금지라는 단어에 그만 꽂혀 버리고 말았다.

금지가 포착된 생각의 씨앗이 된 것이다. 책방 생각도 굴뚝 같았지만, 미션 결과를 다른 선생님께도 나누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방 탐방이 아닌 금지 탐방을 시작해야 했다.

망원동 일대를 다니며 금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표지들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90장이 넘는 서로 다른 방식의 금지들을 찾았다.

망원동 대부분이 작은 골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금지들이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던 순간 갑자기 이러한 수많은 방식의 금지들이 나의 목소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앞에 쇠사슬로 이은 주차금지를 알리는 여러 개의 표지판들은 똑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저의 잔소리였고, 아무런 글씨 없이 우회전 표식에 빨간색 사선으로 강하게 금지를 표시한 표지판은 아이들에게 보였던 정색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협박투의 금지들은 얼마나 많았던지...나 또한 아이들에게 가르침이란 명목으로 남발했던 수많은 협박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교실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교사는 나만이 아니었을 텐데,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수많은 금지의 방식 속에서 살고 있구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금지들이 우리 아이들에겐 가르침이 아닌 잔소리가 되어 먼지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을 텐데.

그 순간 망원동의 좁은 골목이 작년 우리반 교실로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금지 스티커로 도배되어 있는 힘없는 전봇대 하나는 그대로 나의 모습이었다.



오늘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아이들을 처음 만난다. 나는 과연 화자의 어머니와 같은 묵직한 울림을 가진 단 하나의 꾸중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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