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희 청주시세정과 주무관

방민희 <청주시세정과 주무관>

(동양일보) 2018년 1월 1일 새벽 2시.

쿵! 쾅! 쿵! 쾅! 네 번의 큰 굉음과 함께 눈앞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삐뽀 삐뽀~ 에엥에엥~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사고구나!’

품 안에 있던 아기가 없어졌다. 아기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사설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 병원으로 가던 중이었는데, 아기가 없어졌다.

“아기가 없어졌어요! 아기가 없어졌어요!” 난 아기를 찾으려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의식을 찾자 구급 대원들이 몰려왔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아기가 없어졌어요! 아기는요? 아기가 없어졌어요!” 튕겨져 나간 것일까… 죽은 건 아닐까… 난 절규하며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기는 뱃속에서부터 폐에 물이 차서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계속되는 금식과 특수 분유 처방으로 초유도 못 먹인 채 두 달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퇴원한지 2주 만에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구급차로 병원에 가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음주운전차가 구급차를 들이받고 구급차는 전복됐다. 남편은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뇌진탕에 목뼈 3개를 비롯해 흉추, 요추, 갈비뼈 등 19개가 골절되고, 앞니가 깨지고 발톱이 빠지고 귀가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나는 뇌출혈과 오른쪽 정강이 골절. 뇌출혈은 다행히 회복됐지만 정강이 골절로 수술을 받았으나 1년이 지난 지금도 뼈가 다 붙지 않았다. 여전히 목발 신세.

아기는 사고로 왼쪽 허벅지 뼈가 골절됐다. 다행히 수술을 하지 않고 지금은 뼈가 붙었지만 일자로 붙은 것이 아니라 뼈가 곧지 않다. 짝짝이가 될 수도 있고, 다리를 절게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또 한 번 절망했지만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일단 한숨을 돌린다.

그때 병원에 가지만 않았더라면… 다 못난 엄마 탓인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겨우 2주 엄마 품에 있다가 또다시 석 달을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을 오가고, 일반 간병인 손에서 아픔을 견뎌야만 했던 우리 아기.

두 번의 수술 후 겨드랑이 밑에 관이 꽂혔고 코와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줄이 매달리고, 팔다리는 수건으로 묶여서 침대에 고정되고, 금식이 계속됐다. 아기 입에는 늘 얼굴 반쯤을 가리는 젖꼭지가 물려져 있었다. 너무 울어대고 보채 마약 진통제도 두 번이나 투여됐다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기에게 너무 미안하다.

백일도 중환자실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백일에 이동 침대에 누운 채로 아기를 보러 갔었는데 자기 백일인 것을 아는지 늘 힘들어하고 눈만 간신히 떴던 아기가 그날따라 방긋방긋 잘도 웃는다. 가슴이 저리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다. 미안해, 아가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병원생활만 9개월,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지난 1년을 생이별을 하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가족이 함께 지내는 그 평범함이 지난 1년 동안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세 식구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내 이름은 ‘미안한 엄마’다. 지금도 여전히‘미안한 엄마’.

흉터와 다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쓰리다 못해 먹먹해진다. 다행히 지금은 잘 넘어지지도 않고 거의 뛰어다닐 정도로 잘 걷는다. 엄마를 막 꼬집고, 깨물고, 밥도 제법 잘 먹고, 생떼도 쓴다. 그런 아가가 고맙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아가야! 미안해! 근데 앞으로는 미안한 엄마 안 하고, 든든한 엄마, 우리 아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씩씩하고 든든한 엄마가 될게! 적어도 미안한 엄마는 되지 않을게. 잘 견뎌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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