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숙 단양군 주민복지과장

안병숙 <단양군 주민복지과장>
 
 

(동양일보) 내 슬픔 지고 간 친구 에티오피아… 그들을 돕는 건 은혜 대한 보답



지난주 일요일 저녁, 다짜고짜 ‘어휴~ 통화됐으니 됐어요. 피곤할 터인데 얼른 쉬세요’라며 지인이 전화를 끊는다.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 속보를 보면서 에티오피아 연수를 떠난 나를 걱정한 모양이다. 안도하는 목소리에서 진한 사랑을 느낀다.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그것을 기뻐해줘서 더욱 고맙다. 지금 나에게 일어났을 가능성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는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친구라 한다. 인디언들은 친구를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이미 있었다. 바로 에티오피아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기여한 나라이고, 우리의 발전을 누구보다 기뻐해 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점심나누기 캠페인(동양일보·월드비전이 주최하고 충청북도내 자치단체와 교육청이 후원) 모니터링단(단장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 참여를 통해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1950년 6월 25일, 우리나라는 죽음의 공포와 화염에 휩싸였다. 전쟁고아와 이산가족이 넘쳐났다. 그때 이역만리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소중한 목숨을 내걸고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면서 우리에게 온 사람들이 있다.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의 근위대다. 무려 6037명이나 된다. 셀라시에 황제(1892~1975)는 한국전쟁 참전국 중 미국(30만2483명), 영국(1만4198명), 캐나다(6146명)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병했다. 그들은 육군사관학교 출신답게 용감하게 싸웠다. 253번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포로로 잡히지도 없었다. 그럼에도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1974년 맹기스투가 쿠테타를 일으켜 황제를 폐위시키고 집권하면서, 그를 따랐던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은 모든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황제의 시혜로 집단을 이루고 살던 ‘코리안 빌리지’에서마저 쫒겨나 질병과 기아로 숨져갔다.

우리 방문단은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그곳을 찾았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회 생존자 열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셨다. 2006년 국가보훈처ㆍ춘천시ㆍ국방부가 조성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에 참배를 했다. 검은 정장을 입고 하얀 꽃바구니를 헌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술에 힘이 주어지고 목이 메여왔다. 참전용사와 그 유족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에게 30만 달러를 원조한 국가가 우리의 지원을 받는 나라가 된 것 또한 안타까웠다. 나를 키운 내 혈육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본 것처럼 말이다. AWOL이라는 유족이 전시관의 홍보 판넬에서 한 사람을 가리키며 자기 아버지라고 설명했다. 웃으면서 말하는 걸 보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그가 대단하고 감사하다며 나도 따라 웃었다. 아버지 옆에 그를 세워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 기억하기 위하여.

6.25참전국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찾은 충북방문단이 지난 달 27일 에네모레나 현지에서 ‘충청북도홀’을 준공, 테이프 커팅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6.25참전국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찾은 충북방문단이 지난 달 27일 에네모레나 현지에서 ‘충청북도홀’을 준공, 테이프 커팅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미래가 보이는 나라

에티오피아는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한다.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교통량이 많다. 대부분 중고 디젤 차량이어서 아침과 저녁엔 스모그가 도시를 덮는다. 오르막길에선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 차들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러시아워엔 교통체증도 대단하다. 최신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빌딩과 고급 주택, 공사 중인 건축물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그 옆에 바로 무허가 천막집 같은 오막살이 촌락이 더 넓게 형성되어 있다. 다 녹슨 양철을 누더기처럼 덧댄 집들도 부지기수다. 거리엔 소규모 노점상과 구걸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차가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하면 어김없이 차창을 두드리는 남자 아이, 아이를 업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젊은 여인, 돈 통을 앞에 놓고 전봇대에 기대어 조는 사람, 중앙분리대를 아무 거리낌 없이 넘어가는 사람들, 모두 이 도시의 민낯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인들의 눈은 모두 선하고 반짝인다. 정말 예쁘다.

수도를 벗어나면 소나 말 또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종종 등장한다. 도로는 사람과 동물, 차와 마차가 함께 통행한다. 차선도 없다. 그래도 경적은 울리지 않는다.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닦아주고, 다 떨어진 신발을 판매하기도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나마 이 정도의 풍경은 조금 큰 도심의 모습이다. 시골은 더욱 열악하다. 1차 산업인 목축업만 보인다. 그것도 우기에 풀이 자라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옛날 초가집을 연상시키는 집들도 많다. 벽마저도 목초로 지은 집이 있다. 지붕이 뾰족한 걸 보니 우기엔 비가 엄청 많이 오나보다. 시골길은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다. 먼지바람을 일으킨다. 그래도 그 길을 지나며 행복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는 꼼짝 못하고 매케한 매연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먼지를 뒤집어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만보기가 2만보를 넘긴 날도 있다. 비포장도로 덜컹거림이 카운트됐기 때문이다.



●에피오피아의 현실

에티오피아는 약 80여 개의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종족에 근거한 지방 분권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종족간의 이해 대립요소가 사회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1980년대 이후 가뭄과 기근 등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정치적 불안정이나 국경분쟁의 악화 등으로 국내 실향민과 난민을 대량으로 발생시켜 왔다. 2016년 10월 반정부 시위에 대한 경찰의 유혈진압으로 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및 반정부인사 사면에도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었다. 결국 2018년 2월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총리가 사임하고 3월 오로미아주 출신 아비 아흐메드 총리가 취임하였다.

우리 연수단은 지난해 연말 취임한 사흘레-워크 쥬드 대통령을 면담했다. 그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및 인구 과반수가 빈곤상태에 놓여 있는 등 열악한 사회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직시하고 있었고, 우리 대한민국과 함께 에티오피아 경제개발을 희망하였다. 이러한 경제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현 정부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이다. 최근 몇 년간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대통령이 여성의 섬세함과 유엔 장기 근무 경험을 토대로 인류발상지(320만년 전 현존 최초 인류 화석 ‘루시’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 영광을 되찾길 고대해 본다. ‘언젠가는 달걀이 발로 걸어갈 것이다’라는 에티오피아 속담처럼 지속적으로 인내하고 기다리면 에티오피아도 알을 깨고 병아리가 나와 걸어갈 것이다. 친구인 우리와 함께.

에티오피아 에네모레나 에너 지역에 건립된 ‘충청북도홀’ 준공식에 참석하는 충북방문단을 맞기 위해 장미꽃을 들고 기다리는 이 지역 주민들과 어린이들.
에티오피아 에네모레나 에너 지역에 건립된 ‘충청북도홀’ 준공식에 참석하는 충북방문단을 맞기 위해 장미꽃을 들고 기다리는 이 지역 주민들과 어린이들.

●그들을 돕는 건 은혜에 대한 보답

우리가 엔또토 고등학교 ICT센터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은 충청북도민이 모금하여 전달한 PC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에티오피아 전력난 때문이다. 학생들 대여섯 명이 한 컴퓨터에 모여 앉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안타까움이 컸다. 머지않아 에티오피아의 희망인 학생들에게도 또 다른 희망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2016년 아디스아바바에 수출입은행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에티오피아와 2020년까지 5억 달러 규모의 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주요 사업은 전력망 구축사업(술루타-게브레구라차), 고속도로 건설사업(모조-하와사), 도로 개선사업(고레-데피) 등이다. 우리나라의 전기와 물류, 인프라 건설 사업을 통해 에티오피아의 경제활동과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에너모레나 에너 지역(충북빌리지가 있는 곳)에 사는 나의 아들 케베데 다윗(2019년 2월 27일 후원 결연식)의 꿈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이를 위해 24년간 이어온 충청북도민의 애정(사랑의 점심나누기 모금행사)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우린 이미 68년간 우정을 나눈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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