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매서운 시집살이하는 딸이 참다 참다 하도 마음이 괴롭고 몸이 고달파서 야반에 시부모와 신랑 몰래 친정으로 내달았다. “엄마, 아버지, 나 도저히 못 참겠어요. 나 시집에 안 갈래요. 나 그냥 여기 있을래요. 그리로 쫓지 말아요!” 갑작스런 딸내미 하소연에 딸을 친정엄마가 품에 꼭 껴안고 눈물 섞어 말한다. “나도 그랬단다. 나도 그랬어. 더 참아라. 더 참어!” 이를 보고 듣던 친정아버지가 말한다. “얘야, 뒤는 매일 보느냐?” “예, 아침마다 보아요.” “그럼 됐다. 어서 가거라. 어서 가. 날 새기 전에.”

이 이야기를 친정엄마가 시집오기 직전에 딸에게 들려주었다. 그때 친정엄만, “그 친정아버진 딸에게 ‘매일 뒤는 보느냐’고 물었고, 딸은 ‘뒤는 매일 본다.’ 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친정아버진, ‘그럼 됐다고 어서 네 시집으로 가라’ 고 했다. 왜 그랬는지 아느냐?” 하고 물었다. 딸이 어물어물하자, “굶기지 않으면 됐다는 거다. 끼니를 굶으면 뒤는 보지 못할 것 아니냐. 그러니 너도 시집가서 굶지만 않으면 다른 건 다 참고 견뎌야 한다.” 고 했다. 딸은 이를 명심하고 시집가서 그 혹독한 시집살이를 꿋꿋이 견뎠다.

그리고 이 딸이 어느덧 부모가 되어 시집갈 딸을 앉혀놓고 이른다. “어미 말 잘 들어라! 여자는 말이다 ‘높이 놀고 낮이 논다.’ 고 했어. 무슨 말이냐 하면, ‘여자는 시집가기에 따라서 귀애지기도 하고 천해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럼 여자는 시집이나 신랑을 잘 만나야 되겠네.” “그도 그렇지만 니가 할 나름이란 말이지. 시부모나 신랑의 말이나 행동이 네 맘에 안 맞는다고 해서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거나 어깃장을 놔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그저 고분고분 순종해야 첫째 너 편하고 집안 분란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에 아버지가 나선다. “어허, 어디서 엄마 말에 토를 달려고 하노. 다 니 잘하고 잘 되라고 하는 말 아니냐. 그리고 이 애비 말도 명심해라. ’자고로 여자는 제 고장 장날을 몰라야 팔자가 좋다.‘ 고도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느냐?” “건 또 무슨 말이어요?” “여자는 바깥세상 일은 알 것 없이 집안에서 살림이나 알뜰히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니도 시집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으로 알뜰히 살림하고 조신하게 몸가짐을 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이 엄한 아버지 말씀에 기가 눌려 딸은, “알겠어요.” 할 뿐이다.

이렇게 시집간 이 딸이 바야흐로 딸자식을 둔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딸자식이 혼기에 이르러 시집을 가게 되자 두 내외가 딸에게 당부한다. “네가 시집을 가는구나. 이 어미 일이며 집 살림을 네가 다 관장했는데 이제 너 없이 어떻게 살꼬, 네 모습이 눈에 삼삼 밟혀 어이 하노!” “엄마, 자주 올게. 올 때 엄마가 좋아하는 것 많이 사올게 걱정하지 마!” 이러는 걸 보고 아비가 나선다. “이제 시집가면 시집법도를 따라야 한다. 어딜 자주 와. 출가외인이여. 이제 그 집식구 되는겨, 당최 딴 맘먹지 말어!” “그래두 난 올껴.”

이랬던 딸이 시집가 친정엘 오긴 왔다. 하지만 와서, 맞벌이를 하니 제 자식들을 봐달라는 거다. 엄마 아버진 이를 거절 못한다.

딸자식이 시집갈 때는 부모는 있는 것 없는 것을 끌어 모아 바리바리 혼수를 장만해 보내면서 엄마는 눈물을 찍어내고 아비는 며칠간이나 약주를 기우렸다. 이게 딸 가진 부모의 ‘여의살이’다. 즉, 딸들을 여의는 부모의 뒷바라지다.

그런데 제 자식을 친정부모께 맡긴 이 딸이, 이제 자신의 딸자식이 장성해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 두 내외가 노심초사다. 도대체가 시집갈 나이에 든 딸내미가 시집을 안 간다는 것이다. “네 나이 서른이 넘었어. 우리 때 같으면 애가 두셋은 됐을 거다.” “혼자 사는 게 편해. 그러니까 자꾸 그런 소리 하지 마!” “얘가 시방 무슨 소리여. 크면 시집가서 두 내외가 자식 낳고 알공달공 살아야제!” “싫여., 시집에 치이고 남편에 치이고 자식에 치이고 나만 고생이야 지금 혼자가 편해” 이때 아비가 나선다. “부모 밑에 있는 지금은 모른다. 훗날 늙었을 때를 생각해야제. 의지 없이 외롭고 쓸쓸한 게 어떤 건지나 알어 이녈 아야. 여러 말 말고 가!”

딸을 여의려는 부모의 뒷바라지가 즉 여의살이가 이렇듯 여전히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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