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문선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동양일보) 나는 일곱 살, 열두 살 자매를 둔 공무원 생활 16년 차의 엄마다.

부부 공무원인 관계로 정말 동분서주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학교행사 한 번 제대로 참석할 수 없는 죄책감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좀 더 창의적이고 활발하고 긍정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휴일엔 동화책 읽어주기, 박물관 답사 가기, 세종 정부 청사 견학, 문화 유적지 탐방 등 나름대로 생각할 여지와 판단할 근거를 많이 경험하도록 하는 게 아이들 교육을 위한 우리 부부의 방법이었다.

언제나 갓난아기로 생각했던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제는 말대답을 당할 수 없게 되는 경험도 한다. 일곱 살 딸아이가 어느 날 비를 쫄딱 맞고 왔다기에 아침에 가져간 우산은 어쨌냐고 물어보니 “엄마, 내가 얘기했던 친구 있잖아. 할머니랑 아빠랑 산다던 친구, 그 애랑 친하게 잘 지내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 친구가 우산이 없어서, 내가 ‘나는 아침에 날씨가 흐리면 엄마가 따뜻한 배즙을 먹여 보내니 비 맞아도 괜찮다’고 친구한테 줬어, 잘했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사무실 일로 골치 아파하는 내게 “엄마, 어리석은 사람이 뭐라 하면 맘 쓰지 말고 무시하라고 해 놓고서 엄마는 매일 뭘 그렇게 상처를 잘 받아?”라고 한다.

어느 날인가 막내에게 동생체험이 필요할 듯싶어 친구의 아이를 하루 집에서 같이 어울리게 했더니, 작은딸 왈 “엄마는 동생체험을 시키는 거야, 저 꼬마랑 (나를) 비교하려고 데려온 거야?”, 큰딸은 “엄마, 나는 동생이 없는 체험을 하고 싶어”라고 한다.

아이들이 조잘조잘 이런 말들을 할 때마다 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차~’라고 소리를 내는 게 버릇이 됐던 모양이다. 뭐, 참내, 휴, 치, 피, 이런 종류의 황당함에 대한 대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두 아이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엄마, 우리가 얘기하면 늘 ‘차~’라고 얘기하잖아, 우리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 받거든. 그래서 우리 둘이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냥 ‘자전거’라고 하면 어떨까? 차보다는 자전거가 작고 귀여우니까 엄마 기분이 어떤지도 알고, 서로 기분도 덜 나쁘고 재밌을 것 같아, 그렇지?”

내 허망한 감탄사 앞에 꼬마 자매는 머리를 쥐어짜서 고민했던가 보다. ‘차~’ 보다 ‘자전거’가 낫다니, 참 기발한 아이디어 아닌가!

황당함을 위트로 바꿔버리는 어린 자매의 잔꾀를 보니 우습기도 하고, 한수 배우기도 하고 ‘저것들을 정말 내 속으로 낳았나’ 기특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애들 앞에서는 행동 함부로 못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하던 차도 횡단도 이제는 횡단보도를 지켜야 하고, 못된 엄마로 찍힐까 봐, 딸들의 호된 질책이 무서워 슬금슬금 눈치를 봐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어른스러운 행동에 때론 감동을 받아 가슴 벅차오르기도 하는 이 경험은 부모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경험인가 보다.

구청에서 불부합지 해결을 위한 지적재조사 민원업무를 보는 나는 이제 당혹스러운 경우나 민망한 경우, 혹은 너무 막무가내인 경우를 당해 대꾸할 수 없을 때 혼자 속으로 가만히 ‘자전거’하고 되뇌어본다.

그러면 일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화도 좀 사그라지는 것 같고 기분 나쁨도 훨씬 덜한 것 같다.

뜻은 공유하면서 느낌이나 기분은 한결 좋아지는 ‘자전거’란 말을 내게 가르쳐 준 채령이·채은이 내 두 딸들, 그들로 인해 내 삶은 다시 신명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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