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 / 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강준희 논설위원 / 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동양일보) 나라 일을 보고 나라 살림을 맡은 이들에게 비옥가봉(比屋可封)보다 더 좋은 말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찌 나라 이를 보고 나라살림을 맡고 있는 이들뿐이겠는가. 다스림을 받고 있는 백성(국민)에게 있어서도 이 비옥가봉은 더할 수 없는 선정(善政)의 극치다. 그렇다면 비옥가봉이란 대저 무엇인가. 옛날 요순시대 때 사람들이 모두 착해 집집마다 표창할 만했다는 뜻으로서, 나라에 어진 현인(賢人)이 많을 때 비옥가봉이라 한다. 공자가 노나라 정승으로 석 달 동안 정치를 할 때 저자에 소와 돼지를 팔러가는 사람이 각통질을 하지 않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이가 없었다. 이를 도불습유(道不拾遺) 또는 노불습유(路不拾遺)라 하는데, 이 역시 선정의 극치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순시대를 일컬어 태평성대니 강구연월이니 한다. 나라살림을 맡은 사람들이 사심이라곤 눈곱 만큼도 없이 오직 백성의 눈과 귀가 되고 팔과 다리가 된 채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에만 몸을 바쳤으니 어찌 선정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태평성대와 강구연월의 격앙가 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퍼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눈을 잠시 돌려 걸주(傑紂)시대로 옮겨보면 상황이 딴판으로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고금 천하에 포악한 군주로 대표되는 하(夏)나라의 걸왕(傑王)과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나라는 물론 백성을 도륙냈기 때문이다. 걸과 주는 사람을 잡아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 소금에 절이는 포악무도한 대명사로 불리었다는 도척(盜跖)이도 이때에 사람으로 온 나라는 도둑으로 들끓었고 걸핏하면 사람을 잡아 나라 전체가 두려움과 피비린내로 영일이 없었다. 왜 그랬는가? 비옥가봉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말을 잘 듣는 양과 같아 제대로 다스리면 순하디 순하지만 잘못 부려 덧들이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사나워진다. 그리고 또 백성들은 산야의 풀과 같아 바람이 부는 대로 쓰러진다. 그래서 민초(民草)요 풍타낭타다.

우리는 저 캄보디아가 망할 때 마다크가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때 미국 고위층이 신분보장과 안전 피난을 책임질 테니 어서 이곳을 떠나 안전지대로 가라 했을 때 마타크는 뭐라 했는가. “무슨 소리인가. 이만큼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 나는 내 조국 땅에서 조국과 함께 죽겠다.”하고는 망해가는 조국에 남아서 적에게 학살당하지 않았는가.

저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때 서울이 점령당하고 한강 다리가 끊어져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염려마라. 우리는 죽어도 국민과 함께 죽고 살아도 국민과 함께 살 것이다”해놓고는 종당엔 자기들끼리 내빼던 비겁 무비의 배신 정부. 그때 우리에게 마타크 같은 통치자만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 엄청난 단말마의 생지옥과 비극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거듭 되뇌이는 말이지만 백성은 민초(民草)여서 순한 양과 같고 말 잘 듣는 어린아이와 같아 먹을 것 주면 먹어가며 뒤시룩 뒤시룩 잘 논다. 진실한 사랑으로 옷을 주고 진실한 사랑으로 밥을 주면 찍소리 안 하는 게 민초요 풍타낭타(風打浪打)다. 무는 개는 해칠 생각이 없는 사람한테는 짖지 않고 사나운 부사리는 성질이 나지 않으면 뜸배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은 잘만 다스리면 한 마리 양이요 말 잘 듣는 어린아이다. 착한 백성을 일러 적자(赤子)라 하는....적자란 갓난아이라는 뜻으로, 그 나라의 백성을 이르던 말이다. 비옥가봉은 진정 어느 곳에도 없는 영원한 유토피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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