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 40세에 무작정 카메라를 잡았다. 처음에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빠졌다가 곤충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 나라 저 나라 가릴 것 없이 어디서든 곤충을 만날 때마다 연신 셔터를 누르며 그것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40년이 흐른 지금도 곤충과 사진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더 많은 곤충을 만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지금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생태사진작가 조유성(84)씨의 이야기다.

동남아에 머물 때는 모기에 물리는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곳 모기는 한국과 달라 한번 물리면 물집이 잡히고, 흉터가 남지만 “얼굴 생각하면 사진 못 찍는다”고 말하는 조 작가다. 그는 흉터를 ‘생태사진작가로서의 훈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 수라바야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프로볼링고 지역 산골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신기한 곤충들을 만나기 위해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그가 최근 한국에 돌아왔다. 동양일보가 오는 11일~18일 청주예술의전당 대전시실에서 여는 ‘생태사진작가 조유성 곤충사진 초대전’을 위해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가진 것만을 선별해 보여준다.

“제일 힘든 건 외로움이에요.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나중에는 몸살까지 났어요. 노인은 외로움을 참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게 영 쉽지가 않네요. 이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냈기 때문일까, 이번 전시회는 개선장군이 된 듯한 느낌이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많은 곤충을 찍지 못해서 한편으론 아쉽기도 해요.”

40세 이전까지 그는 의사 남편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다. 사진에 소질이 있었던지 조 작가는 사진 입문 2년만인 1978년 충북 전국사진공모전 금상을 시작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전국회원전 10걸 상과 문화관광부 장관상 등을 잇따라 수상했다.

생태 사진은 일반적인 풍경 사진과는 달리 살아있는 피사체를 대상으로 해 그것을 온전히 사진에 담는 일은 특히나 더 고된 일이다. 몇 날 며칠, 길게는 수개월 동안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숲을 답사해야 하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화(羽化·곤충이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고 날개 있는 엄지벌레로 변하는 것)를 담기 위해 꼬박 이틀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새 생명의 탄생을 보기 위해서는 의자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 가는 것도 참으며 햇볕에 팔과 손등이 익는 고통도 견뎌야 했다.

“사람이라면 대략 분만시간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곤충은 달라서 언제 우화가 이뤄질지 몰라요. 40년이나 곤충 사진 찍는 일에 몰두했지만 4종 정도만 우화의 전 과정을 찍을 수 있었어요. 한 번 찍을 때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지는 듯 힘들지만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순간의 예술’이 참 경이로워요. 그것을 지켜보는 희열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지요.”

조 작가는 이번 전시가 끝나면 미얀마로 떠난다. 한 달 정도 머물다 태국 치앙마이로 가 곤충 사진에 몰두할 예정이다.

‘조유성 곤충사진 초대전’ 개막식은 11일 오후 5시 청주예술의전당 대전시실에서 열린다.

조 작가는 “찍어놓은 것이 쌓여 이를 어쩌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전시를 마련해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 기회에 오늘의 내가 있도록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의 고마움을 다시 새겨 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1937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한 조 작가는 광주여고를 졸업하고 청주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충북예총 운영위원과 동양일보 라이프지 편집위원, 한국사진작가협회 충북지회장, 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사진대전 초대작가 등을 역임했다. 문화관광부장관상과 한국출판문화상, 청주시문화상, 충북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립수목원 초대전 등 수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저서로 <한국의 곤충>, <아하교과서 곤충도감>, <사진으로 보는 식물백과> 등 이 있다. 현재 동양일보에 ‘조유성의 앵글’과 착한어린이신문에 ‘곤충이야기’, ‘꽃이야기’ 사진을 연재하고 있다. 글·사진 박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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