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겸 청주시 청원보건소 영하보건진료소장

(동양일보) 새벽 6시. 승용차 앞자리에 식어빠진 호떡이 나뒹군다. 한 입 베어 물고 어구적 어구적 씹는다. 식어버려 뻣뻣해졌지만 설탕이 묻은 쪽이 혀에 닿으니 달달해 그래도 먹을 만하다. 굳어버린 호떡은 전날 저녁 미리 사서 던져 놓았던 내 아침 밥상이다. 교대 근무를 하는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 딸이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아이 양육을 위해 선택한 길이 시댁에 들어가 사는 것이었다. 시부모님과 시할머니, 도련님이랑 아가씨와 함께 해야 했다. 시댁 덕분에 내가 취한 것은 아이 돌봄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것, 직장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감수해야 할 것은 시댁이다 보니 아무리 잘 해 주셔도 조심스러웠다.

합가를 시작한 처음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치마를 두르고 이틀째 되는 날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어머니께서 달그락 소리에 잠을 설친다면서 아침 준비는 당신이 하시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새벽시간 한 시간 더 잠을 잘 수 있는 대신 아침밥은 포기하게 됐다.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아도 시어른들 아침식사 준비도 못 하면서 식은 밥 데워먹고 출근하는 것도 민망해서였다. 친정에서야 어머니가 준비해준 따스한 국에 밥 한 덩이 말아 후룩 마시고 출근했지만 시댁에서야 어찌 내 맘대로 먹을 수 있었으랴.

좌충우돌 시집살이가 녹녹하지만은 않았지만 큰 아이는 정이 많은 시부모님 덕분에 마음이 따스하고 예의 바르게 잘 자라줬다. 아이가 어린이집 갈 때쯤 분가를 하게 됐는데 그때 듬뿍 받은 사랑 때문인지 아이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가 최고다. 아버님 같은 경우엔 내 자식보다 손녀가 더 예쁘다며 유모차로 여기저기 다니시며 자랑하는 낙으로 사셨다.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신 것을 생각하면 정말 나는 복받은 사람이지 싶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꼭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남녀 모두 일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해 자녀를 가진 여성의 경우 육아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 내에 어린이집을 개설한다든가, 남성들도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육아휴직제를 실시하는 등 다방면의 정부시책이 발표되고 있지만 보다 나은 합리적인 길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닌지 모른다.

나이 든 지금도 나는 호떡이 맛있다. 맛 집으로 유명해진 호떡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줄 서는 것도 마다 않고 사 먹는다. 뜨거운 호떡 호호 불면서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왠지 난 지금도 호떡은 식어 굳은 것이 더 맛이 있다. 이는 아무래도 풋풋했던 젊은 날 출근길 새벽에 먹은 호떡이 든든하게 배를 채워줘서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아침밥 대신 먹던 식은 호떡은 눈물의 호떡이었지만 우리 가족을 지켜준 소중한 아침 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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