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동성초등학교 교사

박효진 음성 동성초등학교 교사

(동양일보) 나에게 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개나리라 하겠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한 꼬마는 빨간 재킷 위에 노란 명찰을 달고 등굣길을 걸었다. 꼬마가 걷는 길옆에는 명찰만큼이나 샛노란 봄꽃 개나리가 1학년 꼬마를 응원하듯 활짝 웃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 꽃길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고 해마다 봄이 오면 노란 개나리는 새 학기를 축하하기 위해 자연이 주는 꽃다발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그 많고 많던 봄날의 개나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꿰찬 것이 노란 황사라니. 하늘은 노랗고 어디 한 구석 파란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흰 구름도 없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먼지는 봄날의 기쁨을 앗아갔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는 이제 미움을 넘어서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아이들과 청소 구역을 배정하였다. 수년간 사용한 나의 청소구역표 안에는 바닥 쓸기, 바닥 닦기, 책상 줄 맞추기, 손걸레 등 세분된 청소 영역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창문 여닫기’이다. 아이들은 청소 구역을 제비뽑기로 정하곤 하는데 ‘창문 여닫기’ 업무는 그야말로 ‘꿀’이라고 여기질 만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런데 오늘의 이 업무는 꿀의 영역이 아닌 걱정의 영역이었다. 아이들이 창문 여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청소시간에 생기는 교실 먼지가 창문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먼지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청소시간만은 창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과학적 수치를 들어 설명하기 전엔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하루 창문을 열지 않고 청소를 하였다.

2019년 3월 개학에 맞춰 우리 학교는 전 교실에 공기 청정기가 설치하였다. 아침 등교 시간부터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까지 공기 청정기는 쉼 없이 돌아간다. 그런데도 교실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가 있다. 나는 ‘교실 안에서는 마스크를 벗으렴.’하고 권고조차 하기 어렵다. 나 역시 교실 안의 공기 질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줄 수 없으니 마스크를 벗으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처지다. 공기 청정기가 마스크만 못할까 싶다가도 아이가 얼마나 걱정이 되면 저렇게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싶어 할까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개 개인의 건강은 개인이 지켜야 한다. 신체가 허약한 사람은 적당한 운동과 영양식으로 체력을 키워야 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위생관리를 해야 하며 질병에 걸리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미세먼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은 어떻게 예방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으로 과연 해결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공기는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데 말이다.

누렇게 변해 버린 세상을 한탄하며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보려고 해도 그것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상대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두고 볼 일만은 아니다. 이러다간 정말 모두가 공멸해 버릴 것 같다.

도심 속 봄 길, 개나리를 보기 어려워져도 나는 봄이 오면 늘 노란 개나리를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누런 하늘 아래 개나리는 내가 그리워 한 노란 개나리가 아니다. 맑은 꽃망울로 미소를 감춘 개나리에게 누런 하늘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시절 꼬마에게 봄날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준 개나리에 대한 배신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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