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의 ‘매화우(梅花雨)’ 

‘흙의 작가’ 이무영(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제정한 20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이은영(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씨의 단편소설 ‘매화우’가 선정됐다. 

동양일보는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하던 ‘무영문학상’을 18회로 마감하고, 2018년부터 신인 소설가를 발굴하는 ‘무영신인문학상’으로 전환해 시상하고 있다. 

이번 공모에는 전국 각지에서 229편의 작품이 응모됐으며 문단 권위자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본심에 오른 60편의 작품 중 ‘매화우’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전 11시 이무영 선생의 고향인 음성에서 열리는 무영제(충북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오리골 이무영 생가)에서 열린다. 

20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과 당선 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약력
이은영
1963년 대구출생
경북대학교 대학원 졸
서정시학, 미래서정 시 동인 활동
2015년 시집 <그림자 극장(현대시학 출간)>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수상



당선소감

나는 왜 있지도 않은 슬픔을 끌어내 집을 짓는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떠오르지 않는다. 벽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회칠이 된 벽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나의 이야기는 세상에 없는 이야기지만 어디에나 있는 시시한 이야기다. 시시하지만 끄집어내고 싶어 손발이 끝까지 오그라든다.

멀리 가 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더 먼 곳을 향해 발을 내딛는 법이다. 그러나 시선은 집을 향해있다. 너무 멀리 가면 돌아갈 길을 잃을까 봐 힐긋힐긋 돌아보면서.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은 한곳을 향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날아간다. 저마다의 일상이 있고 일상은 힘이 세다. 이 별에서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살아야 하고, 살아간다.

매화 우는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시대가 만들어낸 아버지기도 하다. 아버지를 그리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화자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온 내 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오래전 아버지는 내게 인생을 그릴 도화지를 주셨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내가 원하는 학과를 진학했을 때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인생을 그릴 도화지다. 여기다 무얼 그릴지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라. 이 도화지는 완전히 네 몫이다.”라고 하셨다.

그 시절 대학은 끓는 가마솥처럼 시국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고, 미래가 막막하기만 했다. 열정만으로 그려지는 내 도화지는 잦은 실수로 덧칠되기 일쑤였다. 좌충우돌하는 나는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 내게 밑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그림 앞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바라만 보던 아버지 심정이 어떠했을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원을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내게 한 장의 도화지를 더 내어놓았다.

지금 내가 그리는 그림은 아버지가 주신 두 장의 도화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채우지 못한 공간이 너무 많다. 시나브로 응답하지 않은 세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당선 소식을 전해 듣고 역과 역 사이에서 멈추어버린 지하철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멍멍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읽고 있던 플래너리 오코너의 책을 마저 읽었다.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길을 떠날 때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끼고 떠나라고 말씀해 주신 구효서 선생님, 언제든 기꺼이 첫 독자가 되어주는 희숙 선배 감사합니다. 한국, 중국, 호주에 흩어져 최선을 다하는 남편과 딸들, 오늘을 있게 해준 이승용씨 사랑합니다.



심사평



올해 무영신인문학상에는 전국 각지에서 총 229편의 작품이 투고됐다. 응모작의 양도 풍성한 편이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도 각각의 강점을 지닌 작품들이 여러 편 눈에 띄었다. 아쉬운 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타자상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오탈자가 잦았고, 내용에 걸맞지 않은 어휘를 사용해 작품의 완성도가 훼손된 경우가 많았다.

60편이 예심을 통과했고 이 중 ‘아촉교’, ‘매화우’, ‘무대는 사라졌지만’, ‘내장국밥을 먹는 시간’이 최종적으로 논의됐다. 이 작품들은 어느 것이 당선작이 되어도 괜찮다 싶을 만큼 자기만의 문학적 개성과 성취를 보여줬다. 동시에 각 작품마다 주제나 서술방식 등 어느 한 부분에서 약간씩의 빈자리가 느껴졌고, 이 부분에서도 경중을 따지기가 힘들었다. ‘아촉교’는 서사문학의 정통성이 작품에 살아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이야기가 익숙한 틀 안에서 전개되고 결말 역시 쉽게 짐작되는 점이 아쉬웠다. 무대는 ‘사라졌지만’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힘이 뛰어난 반면에 주제가 표면에 그대로 드러나 작품의 전체적인 결이 단선적으로 느껴졌다.‘내장국밥을 먹는 시간’은 당선작과 더불어 끝까지 논의된 작품이다. 작가의 재능과 내공을 짐작해볼 만큼 신선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스타카토처럼 끊어지며 핵심을 미뤄가는 구성이 오히려 글의 지속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었다. ‘매화우’는 서사문학으로서의 단편소설에 걸맞은 사건 전개와 서정적이고 매끄러운 표현력이 주목을 받았다. 다만 주제가 다소 모호해보였다.

오랜 논의를 거쳐 심사위원들은 모든 독자들에게 다 공감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어떤 문제를 던지고 파고드는 깊이가 느껴지는 ‘매화우’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논의된 작품들 중 가장 무난하고, 상대적으로 무리가 덜하다는 점도 감안됐다. 당선된 분께는 큰 축하를, 좋은 작품을 내준 다른 분들께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예심: 안수길(소설가), 박희팔(소설가)

△본심: 오탁번(시인․소설가), 이수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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