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이라 아파트 단지에는 불 꺼진 집이 많았다. 며칠 전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찾아온 윗집 사람이 기억나 고개를 빼 올려다보았다. 윗집 사람들도 고향으로 갔는지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길게 뿜으며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연휴 동안 일어난 사건사고를 보며 속으로 사소한 뉴스가 참 많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아버지는 연락이 없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진작 전화가 왔을 것이다. 들고 있던 담배가 손가락까지 타들어 왔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아내가 거실에 있던 집 전화기를 들고 나왔다.

전화야, 한국사람!

아내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당신네 일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 김철기씨 댁 맞습니까? 광저우 영사관 치안괍니다.

그런데요. 아버지입니다, 무슨 일로……

바이윈취 공안국에서 영사관으로 시신을 인수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보호자가 오셔서 확인하셔야겠습니다.

순간 나는 뭔가 착오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렇다고 마지막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리 걷어 올려도 자꾸 흘러내려 밟히는 바지 밑단 같았다. 어디서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눈이 질끈 감겼다.

아내가 무슨 말인가 하려다 말고 내 표정을 살폈다.



창 가리개를 올렸지만 희뿌연 창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 때문에 착륙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행기는 몇 번이나 광저우 상공을 오르내리며 선회하였다. 차라리 전화를 받지 말았으면……, 나는 전화를 받지 못할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만들어보았다.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이대로 회항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했다.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방송이 다시 나왔다. 미끄러지듯이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 내부는 엔진 소음만 가득 찼다. 숨 막히는 고통이 느껴졌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속도를 줄였다. 덜커덩, 바퀴가 땅에 닿는 충격이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기 속에서 큼큼한 습기 냄새가 났다. 춥다기보다는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도로 위로 하얗게 안개가 날렸다. 택시를 타려고 줄을 섰지만 줄의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안내원의 호각소리가 날 때마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공항을 벗어나도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제자리걸음 하듯 밀리던 고속도로가 한낮이 지나 겨우 안개가 걷혔다. 택시는 고속도로를 달려 시내로 접어들었다. 대부분 상점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거리는 한산했다. 고층 빌딩 너머로 광저우 타워 끝이 보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진 것 같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기사는 지나간 길을 다시 돌고 있었다.

이러다가 오늘 중으로 일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기사는 도로가 복잡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택시 기사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나도 지도를 검색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을 살피자 새로 지은 듯 보이는 영사관 건물이 공터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영사관 철제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다. 연휴라 민원실이 텅 비어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 눅눅한 내부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기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리라는 전광판 불빛 때문에 주위가 더 썰렁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중국에 나타나면서 나와의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만요, 바꿔드릴게요.

나다, 애비다! 여기 홍교 공항인데 지금 막 도착했다. 얼른 나와라.

아버지는 너무나 기세등등하게 상하이로 들이닥쳤다. 내가 데리러 나가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붙잡고 나타날 때까지 전화를 할 기세였다. 세상에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사십구재를 끝내지도 않은 때였다.

거침없이 나의 집으로 밀고 들어온 아버지가 소파 가운데 자리 잡고 앉았다.

여기저기 알아본 것도 있고 나도 생각이 있어 왔다. 너희에게 오래 얹혀 있을 생각은 없다. 이 나이에 남자 혼자 어떻게 살 수 있겠냐? 더 늦기 전에 새 어미가 들어오면 좋겠어서 의논하러 왔다. 어디 적당한 여자가 있는지 알아봐라.

아내는 한국말을 잘하지는 못해도 대충은 알아들었다. 쪽 팔리게.

아버지는 내가 아직 젊어서 반항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믿을 여자는 하나도 없다, 뭐가 모자라서 중국 여자와 사느냐고. 그러면서도 아들이나 하나 낳으라고 했다. 마누라야 얼마든 새로 얻을 수 있지만, 핏줄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버지 생각이었다.

돈을 쌓아놓고 너를 몰라라 했겠냐.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어 그렇게 되는 걸. 나쁜 년들이 돈을 들고튀는데 속수무책이더라. 그 돈만 있었으면 널 고생시키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도 내가 애비고 나는 너한테 할 만큼은 했다.

순간, 내 몸속에 흐르는 아버지와 관련된 인자를 모조리 걸러내고 싶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그놈의 ‘피’라는 혈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장춘으로 떠났다. 집에서 일하던 송씨 아주머니와 함께.



박 영사를 기다리면서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짐작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코트를 벗고 타이를 느슨하게 풀자 숨쉬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부스 문을 열고 나타난 박 영사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민원실을 한 번 돌아보고는 3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가자고 했다. 박 영사를 따라 본관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고 문이 열리기까지 엘리베이터는 느리게 작동했다.

박 영사가 책상에 놓인 파일을 들고 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몇 장의 사진을 꺼내 놓았다. 화상도가 떨어져 흐릿하게 프린터 된 사진이었다. 신문기사에 실린 흑백사진처럼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서류를 받아드는데 손이 떨렸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주었지만, 목이 잠겨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사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물이 담긴 종이컵을 슬그머니 내 앞으로 밀었다.

아버지가 일 때문에 석 달 전 장춘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글쎄요. 아버님이 무슨 연유로 광저우에 오셨는지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입고 있던 옷가지에 여권밖에 없다고 들었어요. 무연고처리 될 뻔했는데, 그래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사고도 참…….

박 영사는 어색한 위로를 하고 실무적인 절차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인터폰을 누르자 김이라 직원이 다른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김철기씨가 매춘단속 현장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켰답니다. 아시죠. 광저우가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려고 대대적인 정화 사업에 들어간 거. 마약과 매춘을 뿌리 뽑겠다고 요새 난리도 아닙니다.

김은 군데군데 붉은 도장이 찍힌 서류를 내려놓았다.

나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박 영사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매춘과 마약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어떤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목덜미가 뜨끈하게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중국 공안국에서 넘어온 서류 원본입니다.

사망자 확인서라 적힌 종이에는 이름. 국적. 나이. 발견 장소가 전부였다.

여기에 서명하시고, 공안국으로 가시면 됩니다. 퇴근 시간이 다 돼서. 내일 아침에 저희와 함께 가시죠. 그나저나 공안국은 우리말이 안 되는데……, 필요하시면 통역을 불러 드리고.

영사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뭐든 빨리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매춘단속이라는 말을 전할 때 박 영사의 눈빛이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든, 어디서 어떻게 살다 죽었던지 나와 무관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따라 나온 김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갔다.

박람회장 근처의 호텔로 갔다. 호텔로 가는 길에 친구 영우를 생각했다. 얼마 전 영우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영우와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술에 취해 영우가 훌쩍거렸다.

나 이제 완전히 고아가 됐다. 한국 돌아가도 갈 곳이 없네. 그 영감이, 남자에게 있어 그런 거 있잖아. 히어로. 그래 그 별 볼 일 없는 영감이 내 우상이었다. 마누라가 애처럼 왜 그러냐더라…….

히어로는 무슨 개뿔! 너도 한번 당해봐라 새끼야,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나는 영우가 옆에 있다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로등 불빛들이 유리창에서 강물처럼 흘러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오래 전 출장 와서 들린 적이 있는 호텔 앞에 택시가 섰다. 객실을 찾아 올라가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어깨가 뭉쳐 온몸이 뻐근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종일 안개에 갇혀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고모에게 전화를 했다. 고모는 아버지의 유일한 가족이다.

이게 무슨 일이라니, 세상에.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해…….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던 고모는 그래도 네가 중국에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뭐가 다행이라는지, 나는 한참 동안 전화기를 멀찍이 들고 듣기만 하다가 끊었다. 통화를 마치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밖이 환했다. 어지러운 꿈을 꾸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 먹은 스펀지처럼 몸이 무거웠다. 몇 시나 되었는지 확인했다.

일어나 커튼을 걷어 보니, 32층 객실이 허공에 떠 있었다. 유리창 틀이 거대한 사각 액자가 되어 액자 속은 무지의 흰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흔들리는 수 없는 흰 점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시간에 맞추어 영사관에 도착했다. 건물에서 김이 허둥거리고 달려 나왔다.

안개 때문에 오는데 힘들었지요. 이때쯤이면 열흘 정도는 이래요.

김이 영사관에서 내준 차가 있는 쪽으로 가자고 했다. 김은 기사 옆자리에 타면서 나더러 영사와 함께 뒷자리에 타라고 했다. 먼저 타고 있던 박영사가 나를 보고 손 인사를 했다.

우리를 태운 차는 시내를 벗어나 고가도로로 진입했다. 앞서 가는 차들이 희뿌연 안개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미끄러지듯 앞으로 진행하면 안개가 딱 그만큼 뒤로 물러섰다. 어디쯤인지,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색한 기류가 싫었던지 중국인 기사가 라디오를 켰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광동어가 쏟아져 나왔다. 김이 손을 깍지 끼고 하품을 했다.

박영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3년이나 되었는데 이놈의 안개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니까. 천지에 곰팡이가 피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 여기 사람들은 겨울과 봄 사이에 남쪽에서 안개가 밀려오는 계절을 회남천(回南天)이라고 부릅니다. 몬순 계절풍이 몰고 오는 안개예요. 올해는 유난히 더 심하네요. 이건 뭐 증기탕에 들어앉은 것도 아니고. 아마 습도가 90도가 넘을 겁니다. 상해는 살만하지요?

이 시기는 비가 내려 우중충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요즘은 하도 특별한 일이 당연한 일이 되어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나요. 지난달 웬징루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김 형사, 거 무슨 이권 다툼에 연루되었다고 그랬지? 서울 가족을 찾아 연락했더니 그런 사람 모른다고 했던 그 사람 말이야.

차 안에서 서류철을 꺼내 이것저것 정리하던 김이 말을 이었다.

네. 가족들이 시신 인도를 거부해서 결국 무연고 변사처리가 됐어요.

김은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식한테 문제가 생기면 부모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요.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영사관은 뭐 하는 곳이냐고 난리를 칩니다.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뭐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늙은 아버지가 사고를 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선생님처럼 부친을 찾으러 온 경우는 내가 사건을 맡은 후 처음입니다. 하기야, 오죽했으면 가족들이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만.

한 번은 육십 넘은 노인네가 영사관 앞에서 행패를 부린 적이 있어요. 마침 출근하는 길이라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지요. 경비원들은 못 들어가게 막고……. 막무가내로 자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겁니다. 나 원 참, 여권도 팔아먹고 웬징루에서 해결사 노릇하던 사람인데, 병들고 더는 부비 댈 곳이 없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어떡하겠습니까. 신원을 조회해보니 청주에 주민등록이 살아있더라고요. 여권 새로 만들어 서울 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주었지요.

한국으로 돌아갔나요?

그거마저 되팔아먹고 교민들이 하는 민박집에서 죽었어요. 참나,…… 집에다가 연락하니까, 마누라라는 사람이 자기는 모른다고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선생님을 보니, 고인은 그래도…….

나는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막 사는 것인지? 어느 정도로 살면 가족이 아니라고 말해도 되는지 궁금했다.

산다는 게 참 별거 아니에요. 겉으로 보기엔 모두 잘사는 거 같아 보이죠. 체면도 적당히 세우고. 그런데 들여다보면 씁쓸합니다. 이런 일을 자꾸 겪다 보면 뭐라 말을 못하겠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할 때도 있고.

차창 밖에는 여전히 안개가 파도처럼 너울거리고 있었다.

가족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창밖을 응시하던 박영사가 뜬금없이 물었다.

상하이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선생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버님 세대는 그나마 행복한 세대죠. 우리가 그 나이쯤 되면 뭘, 기대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안개가 정말 대단하네요.

나는 말꼬리를 돌렸다.

박영사의 말처럼 을씨년스러운 한증막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몇 걸음만 멀어지면 희미해지는 사물들이 어느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이런 안개는 처음이다. 안개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도시 전체를 삼킨 듯이 보였다. 그 속으로 팔을 밀어 넣으면 물컹한 안개의 내장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어둠과 안개, 둘을 비교하자면 어둠보다는 안개가 더 질척거린다. 어둠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숨어 있는 사물들이 하나하나가 되살아난다. 그러나 안개는 눈앞의 것들을 바라볼수록 형체가 흐려진다. 거대한 화이트홀 속으로 온 세상을 마구잡이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표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품하던 김은 졸고 있고, 박영사의 얼굴에는 사건이 신속하게 해결돼 다행이라는 안도의 모습과 일상이 주는 피로가 겹쳐있었다.

공안국에 도착하자 정복을 한 경찰이 현관에서 기다렸다. 공안국 승합차로 갈아탄 일행은 중산병원 영안실로 갔다. 지하주차장 맨 구석 문 앞에서 차가 멈춰 섰다. 현관을 들어가 긴 복도를 따라갔다. 일행들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우리는 시신 안치소가 있는 구역의 불 켜진 방으로 들어갔다.

공안은 안치소 담당자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한 귀에 마스크를 걸고 있던 담당자가 서류를 받아들고 꼼꼼히 훑었다. 그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냉동실 쪽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서늘한 냉기와 함께 철제 냉동고 상자가 밀려 나왔다. 아버지의 푸르딩딩하게 부은 얼굴 눈언저리가 깊게 찢어져 있었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손등으로 밀어 올렸다.

아버님이 맞습니까? 박영사가 정면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같이 들어간 중국인 의사는 얼굴의 상처를 가리키며 사망 전에 입은 상처라고 했다. 직접적인 사인이 무엇인지 묻자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쇼크로 추정한다고 했다.

부검을 하시겠습니까? 공안에서는 종결된 사건이라고 연락이 오긴 했지만, 아드님이 보기에 뭔가 미심쩍다고 생각하시면 부검을 신청하시면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영사의 표정에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확인은 했고, 한국으로 운구하시려면 절차상 시간이 좀 걸립니다.

여기서 화장하겠습니다. 어차피 한국에는 아무도 없고…….

오늘은 확인절차만 밟고 내일 다시 하시죠. 시신 인도는 빨라도 내일 오전은 되어야 할 겁니다. 시신 인도에 관한 일은 오전에만 합니다. 하루라도 냉동보관료를 더 받겠다는 수작이겠지만 얘들 일 처리가 느려서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박 영사는 여기서 사건을 종결짓겠다고 했다.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주면서 사망신고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알려주었다. 김은 병원 관리실에 들러 시신 인수절차를 마치고 왔다. 김이 서류를 넘기며 가리키는 곳마다 사인했다. 볼펜 잉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꾹꾹 눌러 서명을 해야 했다.

영사 일행과 헤어진 후, 나는 거리로 나와 병원 반대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강으로 이어지는 거리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춘절 동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좁은 인도 위에는 소수민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좌판을 펴놓고 장신구와 민속품을 팔았다.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를 염소 뿔과 독수리 발톱까지 늘어놓은 것을 보자 나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붉은 자형화가 핀 가로수 길이 부두까지 끝없이 연결되었다. 떨어진 꽃이 바닥에 짓이겨져 보도가 핏자국처럼 얼룩져 있었다. 툭 하고 떨어지는 꽃송이가 발등에 부딪혀 나동그라졌다. 구둣발로 꽃을 짓이기자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뭉개졌다.

적록 색맹인 아버지 눈에는 이 꽃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했다. 핏물처럼 붉게 번진 바닥이 빛바랜 녹색과 노랑 어디쯤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쏟아낸 토사물처럼. 어쩌면 그것은 색이 다 빠진, 오래된 흑백사진의 누르스름한 여백 같은 색일지도 모르겠다.

고가도로의 기둥은 늘어진 덩굴 식물과 이끼에 쌓여 구질구질한 주변이 더 음침해 보였다. 거리는 기름 타는 냄새와 음식 냄새가 뒤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깊이가 보이지 않는 검은 탁류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배에 탄 사람들이 강기슭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큰 도로를 건너자 재개발 구역이 나왔다. 철거를 시작한 건물의 벽과 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X를 아무렇게 그려놓았다. 명절인데도 쉬지 않고 굴착기가 건물을 허물고 있었다. 가림막 펜스를 따라 “中国·夢”이라고 써 붙인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공사장 너머로는 이제까지 지나온 거리와는 다르게 하늘을 찌를 듯 고층 건물들이 서 있었다.

어떤 의미로든 중국은 아버지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중국지명을 한자 그대로 읽던 아버지는 왜 하필이면 이곳 광저우로 왔을까?

나는 사고가 났다는 곳이 어떤 곳인지 가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웬징루를 찾아갔다. 입구부터 한 집 건너 한집이 식당이고 술집이었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한국가요들이 길바닥에서 뒤섞였다. 단층건물 처마에 얹힌 간판에 띠를 두른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돌고 있었다.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심코 들리는 욕설에,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가로수 화단 턱에 술에 취한 남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한국도 중국도 아닌 애매한 거리에서. 길모퉁이 어디쯤에서 숨을 쉬고, 또 어떤 궁리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사건이 난 주소로 찾아갔다. 좁은 골목엔 숙박을 알리는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몸을 비틀었다. 민박이라고 한글로 적힌 화살표를 따라 들어갔다. 낮인데도 볕이 들지 않는 어둑한 골목이었다. 지린내가 훅하고 다가왔다. 집과 집 사이로 미로처럼 좁은 길이 이어졌다. 깨진 보도블록을 밟았는지 틈으로 흙탕물이 솟구쳤다. 닫혀있는 문 가운데 하나가 벌컥 열리면서 아버지가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어깨를 감싼 여자와 남자가 지나가도록 나는 벽에 몸을 붙이고 비켜섰다. 인기척에 놀란 회색 고양이가 급하게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자 ‘행운 민박’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자가 나와 얼마나 묵을 거냐며 반색을 하고 맞았다. 며칠 전 있었던 사건에 관해 묻자 주인 여자는 다른 여자를 불렀다. 연변 말투의 여자가 나를 보더니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아저씨 아들이구나. 아들이 상해서 성공했다고 얼마나 자랑했다고요, 많이 닮았네. 한눈에 알아보겠어. 궁금한 게 많지요. 그렇게 큰일을 당했는데.

여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저리를 쳤다.

혹시 그날, 같이 계셨습니까? 아버지 얼굴도 그렇고 상처가 많던데요.

아저씨가 삼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동북에서 장백산 삼을 들고 왔는데 씨알이 아주 실하더라고. 마약 단속하는 공안이 들이닥치지만 않았어도……. 그놈들이 삼을 보더니 환장하고 눈이 뒤집히는 거라. 그걸 안 뺏기겠다고 기를 쓰고 매달리는 데요, 공안들이 곤봉을 후려치고, 말려도 소용없고…… 아저씨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는 거 그때 처음 봤어요. 삼을 팔아서 아들한테 가야 한다고. 그러더니 저기로 나자빠지는 거라. 그게 뭐라고.

여자는 다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휴지로 코를 풀었다. 여자의 코가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아저씨 인기가 많았어요. 잘 생겼잖아요. 기분파여서 좀 그렇지, 돈도 잘 쓰고.

나는 도망치듯 골목에서 벗어났다.

개새끼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와서,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어머니 빈소에서 술을 마시던 아버지 기억이 났다. 문상객도 없는 빈소를 아버지와 단 둘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 잠이 들었다. 중얼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버지가 영정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는 게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고해성사하듯 털어놓고 있었다.

그때, 그렇게 훈련이 끝나니까 연병장에 트럭이 줄을 서 있는 거야.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야간 이동을 했어. 며칠 밤낮을 술에 고기를 풀더라고. 횡재했다 싶기도 하고 내 평생 그런 대접을 받아 봤어야지 말이지. 무슨 잔치 같았어. 트럭을 타고 갔지. 씨발, 사방으로 누런 똥물이 튀는데……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세상이 미쳐 돌아간 거야. 그런 일을 겪고 사람이 어떻게 맨 정신으로 살 수가 있었겠어?

나는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변기를 끌어안고 속에 든 것을 다 게워냈다. 빈속인데도 색맹인 아버지가 보았던 것과 같은 색깔이었을 누런 물이 끝없이 울컥거리고 올라왔다. 눈물과 침이 범벅되었다.

어차피 나는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무책임했던 아버지를 인정할 수 없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통장을 들고 집을 나갔다. 어머니가 마늘을 까거나 인형 눈을 붙인 돈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문막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간 적이 있었다. 짐작했던 대로 아버지의 동업자는 여자였다. 같이 살던 여자가 돈을 들고 도망을 치면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아버지와 부딪치기 싫어 나는 중국으로 왔다.

웬징루 구석구석 배어 있는 특유의 체취는 잊었던 기억을 신기하리만치 되살아나게 했다. 아버지가 뿌려놓은 혈육이 나 말고도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기어코 나를 찾아왔다.

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교민을 상대로 부동산을 하는 황경희였다. 언젠가 부탁한 사무실이 하나 났다고 했다. 일이 있어 광저우에 와있다는 말을 하다가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너는 내 아들’이라는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황경희에게 사정이 있어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황경희를 떠올리면 아버지의 여자들이 생각났다.

황경희는 고객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수시로 연락을 했다. 사모님은 좋겠다며 질척거리는 그녀의 속마음이 뭔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안개가 완전히 걷혔다. 물에 불은 듯 힘없는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 영사의 말로는 중국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곳이 광저우라고 했다. 매화꽃이 피는 계절에 손님처럼 찾아오는 안개를 이곳 사람들은 매화우(梅花雨)라 부른다. 매화꽃과 함께 안개가 다녀가면 그때부터 봄이다. 중국인들은 말 속에 뜻을 숨기기 좋아한다. 박영사는 매화 꽃잎 속에 곰팡이가 슨다는 매화(霉化)라는 뜻을 숨겨 놓았다며,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었다.

나는 매화우라는 말이 아버지라는 단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가로수 잎이 떨어졌다. 떨켜에 빗방울이 매달렸다.



국영 화장장은 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화뚜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대기실로 나왔다. 번호가 뜰 때마다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기다리는 것이 불편했다. 번호판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포털에 뜬 기사를 검색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했다. 한 무리 사람들이 돌아가고 대기실이 썰렁해졌다. 만약 여기가 서울이었다면 찾아올 문상객이 얼마나 되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거기나 여기나 다를 것이 없다. 아버지는 사람 사이에서 무슨 미니멀리즘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처럼 혼자였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와 나만 남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는 시간이 지나도 달라질 것이 없다. 어디서부터 비뚤어지고 잘못되었는지, 바로 잡아줄 사람 없이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서류봉투에 든 사망확인서를 다시 꺼내 보았다. 한 사람이 살면서 보냈던 육십 여 년의 생이 마감되었다고 짧게 기술되어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이력이 A4 용지에 몇 줄밖에 되지 않는다. 남겨진 것이라고는 증명서 한 장이 전부다.

사타구니가 벌어진 바지를 입은 아기가 우유병을 물고 어른들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아직도 저런 옷을 입히는지 잠깐 생각했다. 아기는 뒤뚱거리며 다가와 싱겁게 손을 내밀어 보이고는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느 순간엔가 아기는 아빠에게 안겨 잠들어 있었다.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창가로 가서 문을 열었다. 주차장에 가득 찼던 차들이 몇 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눅눅한 바람이 들어와 한기가 느껴졌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몸을 움츠렸다. 주머니 속에는 동전 몇 개가 잡혔다. 습관적으로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정문 초소를 지나는 차의 후미 등이 잠깐 켜졌다가 꺼지면 화장장을 벗어나 속도를 내고 사라졌다.

유골함을 받아들고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지나가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다시 밀려왔다. 가로등도 없는 외곽 도로는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았다. 시내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걱정되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자주 헤매던 그 길 같기도 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보이고 버스정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류장 옆에 붙어있는 작은 가게 문이 열려 있었다. 가게를 지키던 노파는 유골함을 든 외국인을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나는 선반 위에 있는 미지근한 탄산수를 사서 밖으로 나왔다.

상자를 시멘트 벤치에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게 지붕을 타고 아름드리나무가 뿌리를 늘어뜨려 휘감고 있었다. 가게가 마치 동굴의 입구처럼 보였다. 그나마 시멘트가 드러난 낡은 벽에는 결로현상으로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렸다. 역류하는 탄산이 코를 찔렀다. 그동안 아버지가 돌아올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화하면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아버지가 중국으로 오지만 않았더라면, 장춘으로만 가지 않았어도, 어떤 가정을 해도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붉은 지폐 세 장을 내밀었다. 광저우역으로 가자고 했다. 익숙한 길인지 운전자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도 과속으로 달렸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앞 유리창에 마주 오는 자동차 불빛이 굴절되어 번졌다. 와이퍼가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닦았다. 굵어진 안개비가 안개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다 끝났어. 돌아가는 길이야. 내일 오후에 잡혀있는 계약만 다음 주로 미루자고 이야기하고……, 역에 가보고 밤에 출발하던지.

휴대폰 화면에 배터리가 마지막 칸을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운전자는 나를 광저우 역 광장 가까이 내려주고 사라졌다. 도매시장과 유흥가가 밀집된 곳이었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보았던 번화가와 버스터미널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멀미 때문에 대합실 의자에 누웠다. 아버지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거리는 불빛이 휘황하게 돌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다. 마지막 버스가 떠나고 청소를 하던 사람들이 우리 쪽을 흘금흘금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애 아빠가 뭘 좀 알아보러 갔다고 묻지도 않는 대답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버리려 했다. 아버지는 그때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광장에서부터 광저우 역사까지는 한참 멀었다. 대열에 휩쓸린 나는 인파에 떠밀려 몸이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춘절이 끝나고 고향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돌아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숨이 턱턱 막혔다. 뒤를 보았지만 되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겨우 빠져나와 대합실 가장자리로 물러섰다. 시간이 지나도 인파가 줄어들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끝없이 기차는 예정된 시간에 출발하고,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갔다. 사람들은 유골함을 들고 있는 나를 사람들은 무심히 한 번 더 쳐다보고 지나갔다.

아버지와 내가 선로 위에서 멈춘 기분이다. 아버지가 탈선하고 말았다는 이 느낌. 어쩌면 아버지는 탈선한 것이 아니고 달리는 기차에서 스스로 내렸는지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목적지를 향해 서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인간으로서 그렇게 실패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을 해주는 셈이다. 아버지의 삶은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고, 실패한 인생도 아니었다. 다만 죽음의 절차가 남달랐을 뿐.

사람들을 밀치고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독립을 외치며 붉은 피켓을 높이 들었다. 전단지를 뿌리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때 확성기와 진압봉을 든 군인들이 역사로 들이닥쳤다. 역사 안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위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수색하던 군인이 내 모습을 보고는 곁눈으로 훑고 지나갔다.

밀리고 밀리다가 나는 코인 로커 옆에 서 있었다. 대합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붐볐다. 가까이에서 한 노인이 가방을 받아들고 아들을 재촉했다. 도시에 있는 아들 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아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코트 주머니에 온종일 만지작거리던 동전이 잡혔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로커 문이 열렸다. 로커 안에 쌓인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어내고 상자를 밀어 넣었다.

철컹, 팔꿈치에 부딪혀 젖혀졌던 문이 되돌아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로커 앞에 서서 굳어진 손가락 마디를 천천히 폈다가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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