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연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윤소연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동양일보) “충고를 안 해야 돼.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야 되는 거라예.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돼요.”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있는 이 글귀를 보고 ‘와~!’ 하고 감탄이 나왔다. 어쩜 이런 진리의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가.

소위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면서 힘든 것 중 하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수가 있을까. ‘이해’ 가 아니라 ‘무관심’으로 넘기는 게 최선이다 싶었다.

나는 분명 ‘A가 당연하지’라고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 상대 편한테로 가면 당연하지 않은, 전혀 다른 ‘B’라는 결론이 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끝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상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라는 말이며,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뜻이다.

‘다르다’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이며,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다름’과 ‘틀림’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적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정치에 대한 호․불호, 채식주의․육식주의에 대한 선택 등. 어느 것이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그저 우선하는 것이 다른, 개인의 ‘소신’ 혹은 ‘선호’일뿐이다.

자기 편의에 따라 내 생각과 판단에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그 다름을 배척하려 하는 것, 이쯤 되면 ‘다름’과 ‘틀림’에 대한 혼돈이라기보다 자의적 적용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그 다름이 자신에게 불편함을 줄 때는 이를 망각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의 다른 점은 틀렸고,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판단한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충고하지 말라! 충고라는 명목의 말 따위로 내가 아닌 누구도 바꿀 수는 없다. 그저 다른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만이 나와 다른 누군가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