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동양일보) ‘브렉시트 정국’ 을 이끌어 온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사퇴가 임박했다고 영국흘 비롯한 세계적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해법을 찾기 위해 8가지 대안을 놓고 ‘끝장 투표’ 까지 실시했지만 모두 과반 투표에 실패해 부결되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의회가 결국 말했다. No, No, No, No, No, No, No, No,”란 기사를 실었다. 이날 영국 하원은 「 제2 국민투표 실시, 브렉시트 취소, 노딜 브렉시트(아무것도 안하는 것), EU의 관세동맹 잔류, EU의 관세동맹과 단일시장 동시 잔류 등」 8가지 방안에 대해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실시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의향투표란 특정 현안을 놓고 거론됐던 해법을 모두 상정해 과반수 투표가 나올 때까지 투표해 여론을 점검하는 제도다.

결국 메이 총리는 “ 앞서 두 번 부결된 EU와의 합의안을 의회가 세 번째 투표에서 통과시켜주면 총리직에서 물러가겠다.” 고 했다. 앞서 ‘메이의 합의안’ 이 두 번이나 부결된 것은 여당의 내분 탓이다. 원만한 결정을 보지 못하자 런던에서 시민 100만 명이 2차 국민투표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여론이 들끓자 여당인 보수당 내부에서 ‘미흡하나마 메이안을 수용해 브텍시트 부터 빨리 해놓고 메이가 물러나면 새판에서 EU를 다시 압박해 보자’ 는 전략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즈나 폴리티코, 가디언 등 영 미 언론들은 이런 메이 총리의 운명이 예견되어 있었다며 ‘유리절벽(glass cliff)’이란 개념을 들고 있다. 유리절벽이란 영국 엑스터대 심리학자 미셀라이언과 알렉스하슬람이 2004년 유리천장의 장벽을 뚫고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장벽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 만든 말로서 기업이나 정치조직에서 위기 상황에 처하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일을 진행하려고 할 때 일부러 여성을 고위직으로 임명해 잠재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성차별적 사회현상으로 물려받은 기반이 좋지 않은 만큼 성공률도 낮다. 조직 내 여성의 사회참여나 승진이 가로막히는 ‘유리천장’ 과도 연계된 개념이다. 언론과 사회학자들은 메이 총리를 ‘유리절벽의 케이스’ 로 꼽는다. 메이 총리는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52대48로 결정될 때 브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등 유력 인사5명 정도가 거론됐지만 브렉시트란 진흙탕에서 발을 빼자 브렉시트 찬성론자도 아닌 무명의 여성의원 2명이 결선을 벌여 총리가 된 사람이다. 당에 지지 기반도 약하고 2017년 총선 패배와 2018년 브렉시트 협상이 꼬이는 것을 빌미로 여당내 핵심 세력에 휘둘렸다. 이제 메이 총리가 물러나면 만년 총리 1순위인 존슨을 비롯한 차기 총리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월27일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이 우승하자 박 미희 감독이 한국4대 프로 스포츠 (야구, 축구, 농구, 배구)사상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로 통합 우승을 일궈내면서 ‘유리천장이 깨졌다.’ 고 각 언론들은 보도했다. 박 감독은 우승한 뒤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어려움과 안도감이 한 순간에 북받쳤다.” 고 울먹였다. 1998년 여자 프로농구와 2005년 여자 프로배구가 시작 된 이래 여성 감독은 4명뿐이며 여성 감독은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2010년 여성 프로 감독 1호이였던 여자배구 GS 칼택스의 조 혜정 전 감독은 한 시즌 만에 성적 부진으로 사임 했고 2012년 여자 농구 KDB 생명의 이옥자 전 감독도 최하위의 성적으로 첫 시즌 도중 물러났다. 데뷔한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1위를 하고도 챔피언 전에서 준우승에 그친 박 감독이 2017-2018시즌에서 최하위(6위)로 마감하자 “그럴 줄 알았다,” “ 역시 여자는 안 돼.” 심지어 “때려 치워라” 는 참기 힘든 악성 댓글이 수 없이 달렸지만 ‘엄마 리더십’ 을 발휘해 2018-19시즌엔 리그 우승 및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뒤를 이어 2017-18년부터 현대건설 여자 배구 감독으로 이 도희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고 2019-20시즌부터 OK저축 은행 여자농구단을 인수해 창단을 앞둔 BNK캐피탈은 감독을 포함해 코칭 스텝 전원을 여성으로만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앞으로 또 다시 유리 천장이 깨지길 기대해 본다.

유리절벽이나 유리천장은 인물 등용만이 아닌 지역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지난 3월21일 충북선 고속철 ‘제천 패싱’ 논란을 잠재우려 제천을 방문한 이지사의 해명에도 몸싸움이 벌어진 것은 타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소외된 지역이라는 ‘유리천장 정서’ 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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