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훈장증을 전수받은 포석의 후손들이 우윤근(앞줄 가운데)대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11일 훈장증을 전수받은 포석의 후손들이 우윤근(앞줄 가운데)대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포석 조명희(1894~1938) 선생에 대한 건국훈장 애국장 전수식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일인 11일 러시아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서 열렸다.

전수식에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포석 선생의 아들 조블라디미르(82)씨, 포석의 장남인 고 조선인의 아들 조드미트리와 조블라디미르의 아들 조파웰 러시아 캐피탈 그룹 회장, 조안드레아, 외손자 김안드레이 전 우즈베키스탄 국립타슈켄트대 사범대학 교수, 한국에 거주하는 종손인 조혜자(소설가)·권병휘 부부, 조성호(수필가), 조광호(뒷목문화사 대표)씨 등 가족과 혈족들이 참석했다.

우윤근 대사, 이진현 총영사, 김혜란 모스크바 고등경제대 교수, 최발렌틴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박현택 모스크바 한인회장도 함께 했다.

국가보훈처는 앞서 지난 3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 항일운동, 뛰어난 항일문학 창작으로 독립의식을 일깨운 포석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충북 진천 출생인 포석 선생은 1921년 12월 일본 동경에서 친일파를 응징할 목적으로 조직된 의권단(義拳團)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귀국 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에 참여했다. 1928년 8월 일제의 탄압을 피해 20만 명 이상의 한인 동포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민족신문 ‘선봉’지 주필, 소비에트 문사동맹 원동관리부 조선인 지도원, 조선사범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시와 소설 창작 등 활발한 문필활동을 펼쳤다. 1920년대부터 1938년 사망 직전까지 국내와 러시아에서 <낙동강>, <짓밟힌 고려>, <녀자공격대>등의 작품을 통해 항일 독립의식을 심었다.

문학과 교육을 통해 민족 계몽의 선봉에 섰던 포석 선생은 1937년 9월 18일 거주지 하바로프스크에서 ‘일본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소련 비밀경찰에 체포됐고, 이듬해 5월 11일 총살당했다. 선생은 1956년 7월 20일 소련 극동주 군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복권됐다.

시인, 소설가, 희곡인, 아동문학가, 평론가, 교육자, 언론인, 번역가 등 다양한 부문에서 한국 근·현대문학사와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포석 선생을 지금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스리스크, 하바로프스크 등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들은 ‘항일투쟁영웅 59인’의 한사람으로 기리고 있다. 박장미 기자

포석 선생에게 전수된 건국훈장 애국장 훈장증.
포석 선생에게 전수된 건국훈장 애국장 훈장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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