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 지난 주 금요일(12일) 저녁 시간의 중국 광저우 번화가의 한 식당. 필자를 포함한 국회 5당 원내대표단 9명이 빡빡한 중국 일정을 마치고 모처럼 여유 있게 저녁을 시작했다. 사건은 말미에 먹음직한 킹크랩이 나왔을 때 시작되었다. 자세히 보니까 껍데기는 그럴싸하고 속 알맹이가 일부 보이질 않았다. 필경 누가 내 몫의 살을 훔쳐간 터였다. 정의당 원내 부대표인 필자가 “살이 어디로 사라졌다, 부당 이익을 취한 자 누구냐”며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고발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당장 국정조사와 특검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저녁 판을 깨버리겠다”고 했다. 이 날 밥을 사는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 책임 아니다, 대단한 사안이 아니니 수사 의뢰만 하자”고 했다. 바른미래당 수석부대표는 “내가 중재안을 내놓겠다”며 “식당 측의 잘못으로 하고 흥정을 하자”고 했다.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어느 편에 설지 망설이기만 했다. 금요일 밤에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과장해서 소개했다. 국회에서 늘 있는 패턴을 당사자들이 재현하고 나서 참석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낄낄대며 웃어댔다. 그리고 술잔이 한 번 더 오가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대륙의 남방에서 비가 내리는데 안에서는 정치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의 물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치의 고달픔을 잠시 잊고 카다르시스에 푹 젖었다.



국민이 정치를 질타하기에 앞서 정치 지도자들조차 지금의 한국 정치가 잘 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딱히 무엇을 콕 집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걸 듣자고 하면 하루 밤이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대체로 공감하는 바는 상호존중과 예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의 존재까지 부정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정치에서는 상대방을 반역자, 스파이, 적을 옹호하는 대변인, 거짓말쟁이, 패륜아,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혐오스러운 상대와는 대화가 될 리가 없다. 각 당 내에서는 강경파가 되어야만 정치적 지위가 보장되는 구조가 작동한다. 그러면 당직자는 양심과 무관하게 공격적인 전사의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아니라 이기느냐, 지느냐만 판가름되는 전쟁의 논리다.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100년 전으로 시계 바늘을 돌려보자. 1919년 4월 10일 밤 10시. 상하이의 3층 임시정부 건물에서 이동녕을 의장으로 임시의정원 첫 회의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지뢰가 매설된 회의는 순조롭지 못했다. 이회영은 임시정부 자체를 반대하고 독립운동의 연락본부 정도만 만들자고 했다. 여운형은 정부보다 당을 만들자고 했다. 신익희가 이들을 설득하여 정부를 만들기로 했다. 3·1운동 후 본국에 만들어진 한성정부의 인정여부도 쟁점이었다. 김동삼과 조소앙이 33인의 민족대표와 별개로 정부를 만들자고 했다. 국호를 정하는 문제도 말썽이었지만 구황실에 대한 우대문제는 더욱 첨예한 논쟁을 유발했다. 황실을 인정하느냐는 새 공화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회의를 마친 것은 4월 11일 10시. 자유와 평등, 평화와 독립의 정신을 담은 10개항의 임시헌장이 제정되었고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는 공화제의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많은 분열과 갈등에도 임시정부가 하나의 정통성을 만들어 낸 것은 절박한 처지의 같은 민족으로서 상호존중과 예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시 정부가 아닌 정식 정부인 지금은 그 최소한의 품격이 위협받고 있다. 그걸 깨닫고 5당 원내대표단은 서로를 위해 술을 권했다.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저녁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