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청주대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동양일보) 북한의 비핵화가 표류하고 있다. 지난 작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의 북미1차 비핵화 회담은 은둔의 나라, 병영국가, 군주국가, 전체주의 국가 불량국가 등의 오명 등으로 점철되어 온 북한이 긴 어둠의 장벽을 뚫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섬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로써 국제사회는 평화의 나팔소리를 듣는 듯 한껏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나팔소리는 시간이 가면서 데크레셴도(decrescendo:점차 약음)로 작아졌다. 그러다가 해를 넘기더니 260일 만인 2019년 2월 27일부터 1박 2일의 일정으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의 북미회담이 개최되었다. 북의 국무위원장은 68시간 동안 3000km를 달려왔고 미 대통령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회담장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회담은 기대와 달리 별 성과 없이 끝났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쏟은 엄청난 정치적 자본이 무가치하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국무위원장에게 “당신은 합의(deal)를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던 것이다. 성명서도 한마디 없이, 빅딜(big deal:일괄타결), 스몰딜(small deal:단계적 이행) 도 없이 노딜(no deal 무합의)로 마감되었다. 시간이 가면서 북은 제1차 정상회담 때의 의지표명과 달리 비핵화에 대한 납득할만한 조치 및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배수진을 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의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1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최근에 진행된 조미(朝美:北美) 수뇌회담의 기본취지와 우리당의 입장에 대해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고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는 말로 오히려 전의를 들어내었단다. 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버티기로 맞서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의 시계는 멈춰 섰고 북미 간에는 겉으로는 평온한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서로를 비난하는 대치형국이 조성되었다. 그동안 북의 비핵화에 직간접으로 관여(involve)하면서 중개자, 조정자 및 촉진자 등의 역할을 해왔던 한국이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 북미 대화 및 비핵화 여정에의 ‘마중물’이 되려는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한국 대통령은 1박3일의 일정으로 지난 4월 11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 미 트럼프 대통령과 7회째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이행을 고수하는 북한과의 간극이 여전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좋은 거래)로 불리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끌어내지 못하였다. 단지 문 대통령은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조속히 남북 정상회담을 열겠다고 말하였고 트럼프는 “한국이 파악한 북한의 입장을 가급적 빨리 전해 달라”고 주문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북의 비핵화는 교착상태를 계속하는 가운데 표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중개자 역할이 더욱 필요해졌다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는 국제적 사안인데다가 북의 비핵화 의지가 선명하지 않고, 북과 미의 태도가 강대 강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보니 북의 비핵화 미래를 낙관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군 정보당국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복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 태도가 더욱 경직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핵화는 합의나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전쟁이 없는 지구촌 건설 및 세계 평화의 구축’이라는 인류의 원대한 꿈과 희망의 등불인 것이다.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평안을 위한 세계시민의 엄숙한 계약이고 선언인 것이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하여 대열에서 이탈할 수가 없는 인류공동의 의무인 것이다. 이치가 이러한데도 합의나 거래형식을 취하는 자세로 접근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비핵화는 인간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타고 났음(천부인권)을, 비핵화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자국의 발전을 위한 기본이고 주춧돌임을 깊이 깨닫고 주저 없이 실행에 옮겨야 한다. 비핵화를 통한 경제번영이야말로 북이 가야할 최선의 길인 것이다. 비핵화는 특정 국가만이 아닌 지구촌 모든 국가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당위적 과제라는 관점에서 사명의식을 가지고 조속히 실현시켜야 한다. 과거로 회귀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된다. 비핵화의 시계는 한시도 멈춤이 없이 끊임없이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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