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청주시 서원구 수곡2동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동양일보) 한겨울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여덟 살 여자아이가 있다. 아이에게 춥지 않으냐 물으면, 안 춥다고 소리 지른다. 봄꽃이 피었지만, 아직은 쌀쌀한 요즘. 그 아이가 반소매 옷을 입고 등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의 집에 가보니 아이가 입을 긴소매 옷이 없었다. 성장기 아이라 계속 옷을 사야 하는데 안 사준 것이다.

사실 이 아이의 부모는 우리 동에서 꽤 유명하다. 아이의 아빠는 노인이고, 그보다 스물다섯 살 어린 지적장애 여성이 아이의 엄마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다. 지출 관리를 잘 못해서 항상 공과금이 체납되기 일쑤고, 긴급 지원을 받았음에도 또 지원해달라고 떼를 쓴다. 수차례 통합사례관리를 했고 지금도 여러 민간 기관과 함께 사례관리를 하고 있지만 생활태도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심지어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가구의 사례관리에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여덟 살 여자아이. 내 아들과 동갑내기다. 항상 눈에 밟히는 아이다. 우리 아이는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춥다고 난리인데, 이 여자아이는 입을 옷이 없어서 춥게 입고 다니고, 엄마가 다른 사람한테 혼날까 봐 안 춥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고민했다. 사업비로 아이의 옷을 사줄까? 그렇게 하면 아이의 부모는 해마다 아이의 옷을 사달라며 떼를 쓸 게 뻔했다. 그래서 우선 청주시 직원들이 보는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수급자 가정의 아이가 옷이 없어서 반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데, 자녀의 옷을 기증해 달라’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지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리고, 메신저 창이 여러 개가 번쩍거리며 인사를 했다.

너도나도 자녀의 옷을 기증하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안쓰럽다며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어보셨다. 바로 다음 날, 여자아이의 옷과 신발이 내 책상에 한가득 쌓였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그 아이가 걱정돼 밤잠을 설쳤다며, 일부러 옷 가게에 가서 위아래로 세 벌씩이나 구입해 아이가 춥지 않게 당장 입혀달라고 퀵 서비스로 보내줬고, 또 어떤 직원은 기증하는 옷과 함께 후원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갑자기 뭔가 모를 뜨거움이 목까지 차올라왔다. 아이의 하교 시간이 기다려졌다. 드디어 옷을 건네는 순간, 아이와 엄마가 동시에 똑같이 생긴 함박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청주시 직원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드리는 옷이니 앞으로 계절에 맞게 옷을 입혀달라고, 세탁도 자주 해서 깨끗하게 입혀달라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직원들이 보내준 옷은 여덟 살 여자아이의 몸을 따뜻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사례관리에 회의감을 느껴 좌절하고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대사가 생각난다.

‘You want to see a miracle? Be the miracle.(기적을 보고 싶나? 그럼 자네가 기적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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