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옛날, 그러니까 올해 78세 된 규삼 씨가 사춘기에 들어선 때다. 머리를 깎으려면 읍내 장터까지 가야되는데 마침 인근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발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오면 이날을 기다렸다가 몰아서 주로 동네노인들이, 특히 10여세 된 아이들이 이발을 했다. 아버지뻘 되는 장년들은 장날에 갔다가 이발소에서 깎고 오는지 동네를 순회하는 이발사의 고객은 거의 아니었다. 여하튼 아이들의 머리는, 머리털이 군데군데 빠져 하얗게 반점을 이루는 기계총(이발총=이바리총)이 떠나지 않았는데, 이는 이발기계인 바리캉을 깨끗이 소독하지 않고 여러 명에게 사용하여 일어난 일로, 과연 이발사는 첫 번에만 석유를 바리캉의 머리에 발랐을 뿐이다. 그래도 이발사는 개의치 않고 기계총의 머리들을 빡빡머리로 깎아주었다. 하지만 이발사가 오는 날은 노인들이며 아이들이 동네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로 몰려갔고 몸이 불편해 못 나온 사람은 끝판에 이발사가 그 집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그 이발료는 당장 그날로 주는 게 아니었다. 보리추수 때 벼 추수 때 그 이발사가 자루를 들고 1년에 두 번 집집을 돌며 품삯으로 거두어 가는 거였다.

그 뿐이 아니다. 농사지은 참외나 생필품 등을 아낙들이 머리에 이고 농가를 찾아들어 파는데 현금이 없는 농가에서는 외상으로 이런 것들을 들여 놓는다. 그리고 그 장사꾼은 늦은 봄과 가을 추수 때 외상 놓은 농가를 돌며 곡식으로 그 값을 받아간다.

이를 두고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리는 말을 규삼은 들었다. “성냥노리는 끝말 년에만 한 번인데 머리쟁이와 장사꾼은 두 번 씩 거두네.” “‘성냥노리’ 요?” “응 그래, 성냥노리란 ‘대장장이가 외상으로 일 해준 품값을 섣달에 농가로 다니며 거두던 일’ 이다.” “성냥은 불붙일 때 쓰는 것 아녀요?” “그 성냥 말구. 그 성냥은 돌처럼 다단한 유황이라 해서 석유황(石硫黃)이라는 걸 마찰시켜서 불을 키는 물건의 하나지만, 이 성냥은 ‘쇠를 불에 불려 연장을 만드는 걸’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성냥쟁이 하면 곧 대장장이를 말하고 또 성냥장사 라는 말도 있는데 이건 불 키는 성냥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대장장이’를 일컫는 거야.” “그럼 대장간에서 연장을 만드는 일을 성냥일이라고도 했겠네요?” “그렇지, 옛날에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사람을 ‘갖바치’라 했듯이 대장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성냥바치’라고도 했다. 여하튼 ‘쇠를 불에 불린다.’ 는 걸 ‘성냥하다’ 라고도 했으니 성냥이나 대장이나 그게 그거지.” “불을 키는 걸 말하는 성냥은 석유황에서 나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대장간을 말하는 성냥은 어디서 나온 말여요?” “글쎄다 그건 이 할아비의 아버지한테 그러니까 니 증조할아버지께 얼핏 들은 말인데 옛날도 아주 먼 옛날 성냥과 발음이 비슷한 말이 있었다지 아마. 그 이상은 잘 모르겠구나. 여하튼 동네사람들이 장터에 있는 대장간에 가서 외상으로 호미, 낫, 쟁기 같은 농기구를 벼려오거나 고치면 대장장이가 일 년의 끄트머리인 섣달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품값을 받는 ‘성냥노리’라는 게 나 젊었을 적만 해도 있었다. 저기 헛간에 걸려 있는 낫, 호미, 괭이 같은 농기구들 다 장터 대장간에서 샀거나 벼려온 거다. 지금 이발쟁이나 그 장사꾼들처럼 일 년에 두 번씩은 안 받아 갔지. 지금은 그 아들이 그 대장간을 이어받아 하고 있지만 성냥노리는 하고 있지 않다. 그 성냥노리 하던 돌아가신 그 어른 참 사람 좋았는데.”

규삼 씨는 얼마 전 고등학교 다니는 손자에게 성냥노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성냥’이라는 말이 어떻게 대장간이란 말과 같게 되었는가를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더니, 그 손자가 며칠 후, 헐레벌떡 할아버지 방으로 뛰어왔다. “할아버지,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궁금해 하시는 거 인터넷에서 찾았어요.” 하더니, “그 ‘성냥’이라는 말은요 ‘성녕’이라는 말이 변한 거래요. 옛날에는 대장일과 같이 수공업, 제작, 작업 등을 다 ‘성녕’이라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장장이나 그 밖의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건 다 ‘성녕’이래요. 그게 ‘성냥’으로 변한 거구요.” “오 그래, 컴퓨터에 그런 게 다 있어?” 우리 손자 장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규삼 씨는, 지금의 불 켜는 성냥과 불을 다루어 연장을 뽑는 대장간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