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시인

(동양일보)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 위대한 예술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과학자, 도시계획가, 해부학자, 화가로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천재성을 발휘한 그를 두고 인류를 위해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찬사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가 그린 작품 중에 오늘, ‘성목요일’을 여는 대표적인 작품이 ‘최후의 만찬’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이 벽화작품을 유네스코는 1980년 성당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열두제자와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운 날이다. 2000년을 거슬러 일어난, 그리고 2000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인류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력으로는 성목요일부터 부활대축일까지 3일간을 ‘성삼일’이라 하여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점인 ‘부활’에 맞갖은 준비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성목요일에 교회는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고 기념하는 ‘주님만찬미사’를 지낸다.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전후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작가는 많다. 그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유독 돋보이는 까닭은 그의 뛰어난 성서적 해석이 바탕이 되어 독특하고 정교한 대칭 구도 속에 열두제자의 내면의 모습까지 담아낸 명화(名畵)인 동시에,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깊은 깨달음을 주는 성화(聖畵)이기 때문이다.

성목요일의 의미를 확실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그림이 있다. ‘세족례(洗足禮)’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굽힌 채 누군가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족례를 ‘발 씻김 예식’이라는 말로 바꿔 쓰고 있다. ‘세족례’ 역시 화가들에게는 성목요일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독일 사제이며 종교화가인 지거 쾨더(Sieger Koeder)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일 것이다. 등장인물은 단 두 명, 베드로와 예수님뿐이다. 발을 씻어주시기 위해 무릎을 꿇은 채 등을 돌리고 있는 예수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둥근 대야에 담긴, 베드로의 발을 씻고 난 그 물 위에 예수님의 얼굴이 비칠 뿐이다.

죽음을 앞둔 예수께서 제자의 발을 씻어주면서 마지막까지 전하려 했던 가르침이 무엇이었을까 되뇌게 하는 그림이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13,1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3,34)”

성목요일인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섬김’과 ‘나눔’이다. 섬김과 나눔, 나눔과 섬김의 정신은 2000년 동안 교회를 이끌어온 원동력이며 공동선을 위한 보편적 인류애(人類愛)다. 진정한 자유는 ‘섬김’에서 비롯되고 진정한 행복감은 ‘나눔’에서 온다.

왜, 하필 발을 씻길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힘들게 몸을 지탱해 주는 것이 발이다.

또한, 몸을 낮추지 않고서는 상대의 발을 씻어줄 수가 없다.

요즘 세상에 ‘섬김’과 ‘나눔’, ‘겸손’과 ‘사랑’이라는 말처럼 공허한 메아리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엔 공감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도 ‘최후의 만찬’을 맞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발을 들이다.’는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동사다. 남은 생은 어떤 길에 발을 들일 것인가,

저녁상을 물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발을 서로 씻어주면서 ‘명화 속의 오늘’이 주는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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