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 4.19학생혁명 기록이 부실하거나 축소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청주 상당공원의 충북4.19학생혁명기념탑.
2010년 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가 청주공고 교문 옆에 세운 4.19혁명의 진원지 비문.
1960년 충북4.19학생혁명의 도화선이 된 4.13, 4.16, 4.18 학생시위를 주도했다는 당시 청주공고 2학년 동기생 김태형(왼쪽부터)·강권원·곽한소·김영한 씨가 15일 저녁 청주시내 모처에서 왜곡된 청주지역 4.19학생혁명사 기록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
1960년 충북4.19학생혁명의 도화선이 된 4.13, 4.16, 4.18 학생시위를 주도했다는 당시 청주공고 2학년 동기생 김태형(왼쪽부터)·강권원·곽한소·김영한 씨가 15일 저녁 청주시내 모처에 모여 왜곡된 청주지역 4.19학생혁명사 기록을 바로 잡자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동양일보 이종억 기자) 충북지역 4.19 학생혁명사 기록물 대부분이 왜곡되거나 축소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주장이 4.19혁명 59주년을 앞두고 제기됐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맞서 충북지역 4.19학생혁명의 도화선이 된 청주지역 최초의 학생시위를 주도했다는 당시 청주공고 2학년 동기생 김태형(78·보은군 산외면 중티리)·강권원(78)·곽한소(78)·김영한(77)·이영일(77) 씨에 의해서다.

김태형 씨 등 5명은 지난 15일 “내년이면 4.19혁명 60주년을 맞는다”며 “더 늦기 전에 토론회를 열어서라도 공론화해 충북지역 4.19학생혁명사 기록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왜곡 또는 축소됐다고 주장하는 충북지역 4.19학생혁명 관련 기록물은 크게 3가지다.

김 씨 등은 서울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안에 있는 4.19혁명기념관의 영상기록물 중 ‘충청편’을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꼽았다.

또한 청주공고 정문에 세워진 ‘4.19혁명의 진원지’비문도 잘못 표기됐으며, 청주 상당공원의 충북4.19학생혁명 기념탑 건립 취지문은 내용이 빈약하거나 축소됐다는 주장이다.

김 씨 등에 따르면 4.19혁명기념관의 영상기록물 충청편에는 1960년 4월 17일 청주고생과 청주상고생이 시위 중 경찰과 유혈충돌을 빚은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당일 청주에서는 시위가 없었다.

4월 18일에도 청주고와 청주상고 학생이 앞장서서 시위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사실은 청주공고생들이 주도해 청주상고생 등 2000여명이 시위했다는 것이다. 청주고생들은 결코 청주의 4.19학생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김태형 씨는 “영상자료에는 4월 19일 청주공고 학생 500여명이 시위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4월 19일에는 청주농고생과 청주대 학생들이 시위했다’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청주공고생들이 4월 13일부터 4월 16일, 4월 18일까지 3차례에 걸쳐 3.15부정선거 무효화를 위해 시위계획을 세우고 청주시내 각 학교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시위에 가담할 것을 설득하는 등 청주지역 4.19학생혁명을 주도했다’로 기록할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2010년 12월 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가 청주공고 교문 옆에 설치한 ‘4·19혁명의 진원지’ 비문도 문제 삼았다.

‘1960년 4월 18일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해 고등학생 수천명이 자유·민주·정의의 불꽃을 당긴 4.19혁명의 시발지’로 표기하고 있으나 청주공고는 4월 13일 청주에서 가장 먼저 시위를 벌였기 때문에 ‘18일’이 아니라 ‘13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 씨 등은 “비록 비문의 내용이 잘못 기록되긴 했어도 이 ‘4·19혁명의 진원지’비는 청주공고가 충북에서 최초로 3.15부정선거에 맞서 시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국립4.19민주묘지의 4.19혁명기념관 영상기록물 중 충청편도 이같이 정정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2010년 11월 청주 상당공원에 세워진 충북4.19학생혁명 기념탑 건립취지문에 대해서는 “기념탑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충북4.19혁명사에 대한 내용이 부실하거나 소홀히 취급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기념탑에는 충북의 4.19학생혁명 내용에 대해 “그 당시 충북에서도 4월 19일을 전후해 청주에서는 청주대학교, 청주공고, 청주상고, 청주농고, 청주고, 세광고, 청주여고, 청주여자기고, 충주에서는 충주고, 제천에서는 제천고, 제천농고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수백명의 학생을 경찰이 연행해 구금하고 심문했다”는 정도만 기록하고 있다.

김 씨 등은 “역사가 아무리 권력 실세에 의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돼 기록된다고 하지만 청주의 4.19학생혁명을 주도하거나 적극 가담한 인사들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정한 처사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청주지역 최초 4.19학생혁명 주동자이지만 아직 4.19혁명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가보훈처에 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심사에서 또 탈락했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는데다 있는 사실마저 왜곡된 채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김태형 씨는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금권·관권·폭력의 결정판 3.15부정선거에 맞서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치며 싸웠지만 청주 4.19학생혁명사에 대한 기록은 정의롭지 못하다”며 “4.19혁명 정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왜곡된 기록들이 하루바삐 사실대로 바로 잡히는 날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보은 이종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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