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자 이은영씨 인터뷰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20회 무영신인문학상은 이은영(57·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씨의 소설 ‘매화우(梅花雨)’가 차지했다.

올해 무영신인문학상에는 전국 각지에서 총 229편의 작품이 투고됐으며 이중 60편이 예심을 통과했다.

‘매화우’는 서사문학으로서의 단편소설에 걸맞은 사건 전개와 서정적이고 매끄러운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으며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심사는 오탁번 시인·소설가, 이수경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박희팔 소설가가 맡았다.

시상식은 19일 오전 11시 음성군 읍성읍 한불로 이무영 생가에서 열리는 23회 무영제 행사장에서 개최된다. 이씨는 이날 5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무영신인문학상은 농민문학의 새 지평을 연 ' 흙의 작가' 이무영(李無影·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2000년 제정한 문학상이다.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던 무영문학상을 18회로 마감하고 2018년부터 신인 소설가를 발굴하는 ‘무영신인문학상’으로 전환했다. 다음은 당선자 이은영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당선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하시겠지만, 글을 읽는다면 상처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 나의 아버지는 작품 속의 아버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신 분입니다. 캐릭터 연구를 하다보면 ‘그 시대 아버지들은 흔히 그랬지’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 소설 속의 캐릭터와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아버지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소설 ‘매화우’는 어떤 계기로 탄생했나.

“언젠가 영화 ‘심플라이프(Simple Life)’를 봤습니다. ‘심플하다’는 말은 ‘담백하지만 간단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여정을 간추리다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해집니다. A4 용지에 요약하면 단 몇 줄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인촌의 무연고 주검이 떠올랐습니다. 2월이면 광저우로 불어오는 계절풍과 안개가 배경처럼 그려졌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언제나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면접 보러 가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작품이 품을 떠나는 순간 작가의 의도나 의지와 무관해지는 일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낯선 곳에서 조우했을 때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있다면.

“글쓰기를 늦게 시작한 탓에 독자 공감 층이 국한되지 않을까 조바심 날 때가 많습니다. 우연이지만 나의 화자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자들입니다. 세상을 향해 할 말이 가장 많은 세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만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언제부터였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솔직히 소설가로 등단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당선이 ‘넘사벽’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소설을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습니다. ‘나는 그저 고급 독자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소설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편을 완성하고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앞으로 소설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고 직감 했습니다. 여러 편 작품이 쌓이면서 내 집을 갖고 싶어졌습니다. 조심스럽게 재외동포문학상을 두드렸는데 대상을 받았고 이후부터 용기를 냈습니다.”



-먼저 시인으로 등단한 것인가.

“먼저 수필로 등단했습니다. 2006년 한국 수필 신인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2011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5년 시집 <그림자 극장>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언주’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유가 있는가. 왜 소설에서는 필명을 쓰지 않고 본명을 쓰는가.

“먼저 수필로 등단했을 때 동명 선배 작가가 있어 본명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필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름과 함께 내 속에 다른 성질의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시를 쓰는 나와 살아가는 나. 소설을 쓰는 나는 생활에 가까운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 몰입 없이 아무 때나 느껴지는 것을 메모하고 정리를 하다보면 하나의 상황이 이루어질 때가 많습니다.

시가 오는 것이라면 소설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필명을 쓰지 않고 본명을 쓰게 된 이유라면, 시와 관련해서 아무도 내게 본명을 물은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언주 시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이 호명될 때마다 본명이 거론됐습니다. 괄호 속에 들어가 버린 내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설을 쓰는 내가 본래의 나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번 당선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족하지만 ‘매화우’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길 터주신 심사위원님과 동양일보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족은 최초의 통이다. 오해와 단절로 집이 무너지고, 아무리 담을 쌓고 살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는 순간 가족은 또다시 한 통속으로 결속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로든 우리는 이 별에서 장기 체류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불완전한 이방인으로 내일로 나가기 위해서는 가족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과 앞으로의 계획은.

“국외자(國外者)면서 국외자(局外者)들의 이야기 입니다. 집을 떠나 있는 사람들의 페이소스를 죽음과 삶을 통해 조명하고 싶습니다. 우선 낯선 곳에 장기체류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생각입니다. 겉보기에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나름 이주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겪는 단절과 외로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가감 없이 보여줄 생각입니다.”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

“정착하면 먼저 가마솥을 걸고 싶습니다. 그 속에 감정과 경험을 설설 끓여 단 한사람이라도 공감하는 글을 독자에게 내놓고 싶습니다.” 박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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