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세상은 변해가는데 꿋꿋하게 지조를 지키는 곳이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 행태다. 이들은 누가 뭐라 하든 자기 할 소리만 하고 뒤로 나 앉는 수법을 즐긴다.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나 좌우를 살피다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싶으면 독버섯처럼 다시 고개를 삐죽 내민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인간의 속성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수많은 국민들이 국가의 폭력에 숨져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역사적 진실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배의 침몰보다 구조를 하지 못해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승객 304명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죽거나 실종된 참사다.

정치인의 막말 시리즈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건재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 집단’인 것 같다. 아마 이 집단은 의도적 망언이 자신들과 궤를 같이하는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2월8일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가 열렸다. 부제는 ‘북한군 개입여부를 중심으로’였다. 발표자는 지만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죄로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극우다. 이 자리에서 그는 5.18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이며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했다.

그동안 입만 열면 5.18 망언, 모욕으로 유가족과 광주시민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었던 사람을 국회에 초청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국회의원들이 해괴한 주장에 동조하며 망언을 쏟아낸 것은 더 큰 충격이었다. 지씨야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무시할 수 있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입에서 지씨 못지 않은 망언이 나왔다는 것은 실망이다.

공청회 주최자인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5.18 폭동이 정치적으로 이용한 세력들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순례 의원은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며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비하했다. 역시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은 영상메시지로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된다고 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독일은 과거에 대한 뼈아픈 반성으로 나치를 찬양하는 말을 하거나 나치식 인사, 복장을 하는 것마저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독일 민주주의가, 독일 사회가 우리보다 못해 이런 법을 만들었다고 보지 않는다.

역사를 왜곡해 갈등을 조장하고 분노를 유발하는 게 국회의원이 할 짓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누가 뭐래도 엘리트 집단이다. 대부분 좋은 환경에 좋은 학교를 나온 지식인이다. 그런 머리를 국민을 위해 써야지 말장난으로 더 이상 국민들을 피곤하게 안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세월호 비하병이 또 도졌다.

자유한국당 차명진(경기 부천당협위원장)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자식의 죽음에 대한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처 먹는다”, “귀하디 귀한 사회적 눈물 비용을 개인용으로 다 쌈 싸먹었다”, “지구를 떠나라, 지겹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같은 당 정진석(충남 공주청양)의원은 다음날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이제 징글징글해요‘라고 동조했다.

세월호와 관련된 막말은 시리즈가 됐다. ”세월호처럼 완전 침몰했다(정진석-지난해 6월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후), “세월호 같은 교통사고에도 5000억원을 지출한 나라(안상수 의원), ”세금 도둑“(김재원 의원), ”노숙자 같다“(김태흠 의원-국회 농성중인 유가족을 향해), “시체장사, 비겁하고 거지 근성”(김순례 의원) 등 차마 말로, 글로 옮기기가 민망할 정도다.

비난이 거세지자 자유한국당은 두달 가까이 미룬 5.18 망언자에 대해 징계를 했으나 경징계 처분에 그쳐 또다시 역풍을 자초했다. 한국당은 지난 19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김진태 의원에게 경고, 김순례 의원에게는 당원권 정지 3개월을 처분했다. 이같은 처분은 내년 치러질 총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솜방망이 처벌, 면죄부, 처벌 아닌 격려, 자유망언당 등 비난이 빗발친 건 당연하다.

황교안 대표는 세월호 망언이 터지자 서둘러 사과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징계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논의하겠다는 표현을 써 색이 바랬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유가족이나 피해자분들께 아픔을 드렸다면 이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단순히 '사과한다'면 될 것을 까탈스럽게 ’...라면‘이라는 사족까지 달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국민들로부터 ’징계를 징계하라‘는 소리를 듣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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