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예술은 자연, 도담(島潭)의 풍광에 취하다

 
 
도담삼봉.
도담삼봉.

 

(동양일보) 꽃은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동백꽃은 차디찬 바람을 온 몸에 감싸며 붉은 피를 흘리듯 쓰러진다. 하얀 목련은 그토록 영롱하던 꽃봉우리를 펼치기가 무섭게 낙화한다. 진흙처럼 잔인하게 산화한다. 흩날리던 벚꽃은 하얀 눈밭이 되더니 기어코 땅바닥에 눕는다. 라일락이 피는가 싶더니 조용히 눈을 감는다. 소리없이 생을 마무리하면서 차마 자신의 향기를 가져가지 못했다. 아카시아 꽃도 향기로 그 죽음을 웅변한다. 산수유와 생강나무꽃은 산과 들에서 노란 물감을 뿌리며 제 갈 길은 간다. 선속의 진달래는 연분홍 속살을 한 잎 한 잎 바람 속으로 날려 보낸다.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나는 할미꽃은 필때부터 떠나야 할 때를 안다. 고개 떨구며 짧지만 아름다웠던 자신의 지나온 삶을 묵상하다.

꽃은 버려야 할 때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부려놓는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다. 아, 낙하하는 꽃들의 아름다움이여. 꽃잎이 진 그 자리에 씨방이 들어왔다. 햇살과 바람과 태풍과 어둠의 나날들을 지켜내며 새 날을 꿈꾼다.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노래한다. 꽃은 지지 않는다. 다만 꽃잎이 떨어졌을 뿐이라며. 지고 난 뒤 다시 피는 그 신비를 본다. 삶이 이토록 특별하다는 것이 경이롭다. 나도 세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희망으로 다가설 수 있을까. 가슴이 뛴다.
 

도담삼봉 너머에 있는 고즈넉한 마을.
도담삼봉 너머에 있는 고즈넉한 마을.

 

그래서 최고의 예술은 자연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예술적 행위가 자연을 닮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 어떤 위대한 예술도 자연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양의 도담삼봉 앞에 서서 또 한 번 자연의 위대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숲과 물과 기암절벽과 꽃들의 잔치, 새새틈틈 끼쳐오는 햇살과 바람과 구름, 그리고 억겁의 세월을 달려온 신화와 전설…. 이것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예술이다.

단양팔경 중 으뜸은 도담삼봉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세 바위가 못 가운데 우뚝 솟아 있고, 도담에서 흐름을 거슬러서 수백보쯤 가면 푸른 바위가 만 길이나 된다. 황양목과 측백나무가 돌 틈에서 거꾸로 자라고, 바위 구멍이 문과 같아서 바라보면 따로 한 동천(洞天)이 있는 것 같다”고 기록돼 있다.

이곳에도 구전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선군에서는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삼봉에 대한 세금을 부당하게 요구했다. 소년 하나가 기지를 발휘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말했다. 그가 바로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이다.

도담삼봉은 남한강의 푸른 물결과 주변의 풍광으로 비단삼아 두르고 있다. 당당한 풍채가 돋보이는 남편봉을 중심으로 아담한 모양새의 처봉과 첩봉이 양 옆을 지키고 있다. 특히 남편봉은 삼도정이라고 불리는 육각정자가 멋들어지게 서 있다.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푸르고 당당한 기상이 멋스럽다. 한 겨울의 설경은 또 어떠한가.



배 돌려 둑에 올라 앉아 흐르는 물 마주하고 있는데

보이는 것은 구름 자욱한 산뿐이라 경치 그윽하네

고을 원님 더불어 감상할 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나

석 잔 술을 오로지 물 속의 갈매기에게 권하네

<이황(李滉) 퇴계집 별집 권1 ‘도담(島潭)’>



퇴계 이황 선생의 마음을 흔들어 시를 토하게 했다. 퇴계는 1548년 단양군수로 재임하던 중 도담삼봉의 매력에 빠져 이렇게 노래했다. 뒤이어 단양군수를 맡은 황중량도 “깊은 물 한가운데서 세 떨기 우뚝한 봉우리”라며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도담삼봉은 오랜 세월 나그네의 마음에 삶의 여백을 주었다. 시인의 주옥같은 시 구절이 되었다. 팔도를 유람하는 묵객들의 그림이 되었다. 상처입은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치유의 힘이 되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처럼 살 것을 묵상토록 했다. 그렇게 도담삼봉은 수많은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었다. 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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