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남 청주시청원구산업교통과 주무관

김길남 <청주시청원구산업교통과 주무관>

(동양일보) 세대 간 갈등이 극에 달한 요즘이지만, 이런 극명한 갈등의 시대에도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원망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평가절하하기 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갈등은 ‘이해’로 바뀔 수 있다.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년 전쯤 내덕2동주민센터에 근무하던 때였는데 유난히 주민센터에 자주 찾아오던 할머니가 계셨다. 가정형편이 매우 좋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수급자 선정 기준에는 맞지 않은 위기가정이었다. 수차례 할머니에게 기초 생활 수급대상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수급자가 되게 해달라고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이쯤 되면 담당자들도 지치기 마련이다. 처음의 연민은 귀찮음으로 바뀌어 버렸고 할머니는 그저 떼나 쓰는 이해 못 할 사람으로 치부됐다.

그러던 어느 날 주민센터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부쩍 야윈 것 같아 “식사는 하셨어요? 다리도 불편한데 다니는 데 힘들진 않으세요?”라고 건넨 말이 할머니에겐 큰 위로가 됐나 보다. 할머니는 “밥을 안 먹은 걸 어떻게 알았냐”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때 망치로 머리를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힘든 외침을 난 단지 몇 개의 규정에 대입해 너무 쉽게 판단했던 것은 아닐까, 진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의 힘든 외침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있는 규칙에 그 사람이 해당이 되는지 안 되는지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우리는 상대방의 어려움을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도 10년이 넘게 공직생활을 했지만 주민들의 불편함을 규정에 맞춰, 있는 예산에 맞춰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세대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살아온 경험, 이념에만 맞추고자 할 것이고, 젊은 사람들은 그들의 가치와 트렌드에 맞춰 상대방을 판단할 뿐 서로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몇 번의 협의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다가간다면 이런 갈등의 간극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할머니는 고맙다며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오셨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힘든 살림에 음료수까지 사 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고마웠지만 “할머니, 저 이거 받으면 경찰서 가요. 할머니 좋아하는 거 사 드세요.”라고 말하고 돌려보내드렸다.

연신 뒤돌아보며 인사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성별이 같든 다르든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 한다면,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하려 한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라고…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