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얘야, 한 가지 일만 고집하지 말구 딴 일두 좀 생각해보렴.”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잖아요.” “근 그렇다만 해도 해도 안 되니깐 하는 소리제.” “쪼끔만 더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둘께요.” “쪼끔만 더 가 벌써 언제냐 삼 년이 넘었다 삼 년이. 젤루 네 몸이 지탱을 못하겄어. 서른이나 된 젊은 애가 빔낮으루 벌이도 안 되는 그느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 말여.” 아무리 그래도 아들애는 아예 묵묵부답으로 여전히 컴퓨터 앞을 고수한다.

이 아들애의 고집은 마을에서도 화제다. “그 생골댁네 아들말여, 거 장가갈 생각은 하지 않고 날마다 컴푸턴가 앞에만 앉이 있다지?” “그렇댜. 증권인가 뭔가에 미쳐서 그거에만 신경 쓰느라 죽치고 있다는겨.” “도대체 그게 뭐간디 정신을 쏟는겨?” “아메 돈 놓고 돈 버는 건가벼.” “그럼 노름아녀?” “노름이면 버젓이 내놓고 저리 하겄어. 그러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여하튼 여지껏 빼두박두 못하는 건 사실인가벼.” “그럼 중독여 중독, 중독이 따로 있어 헤어나지 못하믄 중독이지.” “근데 뭐가 그리 재밌고 이득이 된다고 그거에 매달리고 있는겨?”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응께 그러는겨.” “믿는 구석?” “그렇지, 두 가지 믿는 구석이 있지. 하나는, 제 집에 땅덩이가 좀 있어 제가 안 벌어도 제 부모 농사짓는 것 가지고도 충분하니께 그걸 믿고 부지하세월 저러는 게고, 또 하나는 언젠가는 한 번 왕창 노가 날 때가 있다는 걸 믿는 거제.” “노가 나다니 그 증권인가 그것 말여?” “그렇지 처음엔 이삼십만 원씩만 할 때는 제법 몇 만 원씩 붙어서 재미가 있어 자꾸 액수를 키워나갔는데 지금은 그걸 홀랑 날리고 다시 또 시작을 했다는데 별 재미를 못 보는 모양여.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에 왕창 복구할 때가 있을 거라며 그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잖여.” “그러니 제 부모 속이 얼매나 상하겄냐 말여. 제발 덕신 그만 손 떼고 농사일이나 부지런히 하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는겨.”

그래도 군대 제대하고 몇 해 동안은 집 농사지으며 부모 일도 많이 도왔다. 그랬는데 느닷없는 홍수를 만나 농토가 휩쓸려 나가 그해 농사가 망조 들었다. 하여 집안이 실심해 허탈해하고 있을 때 이 아들애의 증권놀음은 시작됐다. 애초엔 농사일에 실망해 일찍이 고등학교 때부터 익혀둔 컴퓨터에서 증권으로 집안을 일으켜보겠다는 일념에서였다. 하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인가. 아버지 엄마가 힘들여 농토를 복구하고 이제 형편이 나아진 지금까지도 손을 떼지 못하고 매달려 있으니 어언 3년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하여 아버지가 작정하고 아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제 엄마도 옆에 있게 했다.

“얘야, 내 말 잘 들어라! 입안에 있는 혓바닥도 물수가 있다고 했다. 우리 집안이 어려움을 당하기 전까지는 넌 내 말이라면 내 혓바닥같이 고분고분 말 잘 들었다. 그러던 너한테 지금은 내가 당하고 있는 심정이다 마치 내 입안의 혀를 내가 깨물린 느낌이야. 그 실망으로 내나 니 엄마의 맘이 얼마나 아픈지 아느냐. 또 이런 말도 들었다. 어느 도둑이 자식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시키기 위해서 하루는 자식을 데리고 큰 나무 아래로 갔다는구나. 그리고 자식에게 나무 위로 올라가라고 했단다. 만약을 대비해서 이 애비가 밑에서 받아줄 터이니 맘 놓고 높이 올라가라고 했지. 그 자식은 아버질 믿고 나무 꼭대기까지 용을 쓰며 올라갔다. 그러자. 아버지 도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왔단다. 천신만고 끝에 어렵사리 돌아온 자식이 아버지 도둑께 화를 내자, ‘이 세상에 누굴 믿어 제 길 제가 찾아야지’ 했다는 거다. 너 지금 컴퓨터 일에 미쳐 있지. 언젠가는 한 번 왕창 걸려들 것 같지. 그걸 믿고 그 미련을 못 버리지. 이 세상에 무엇을 믿느냐? 진즉에 제 갈길 제가 찾아야지. 마지막으로 내 한 마디 더 하마. 우린 농사꾼이니께 땅 곧 흙에 관한 것이다. 너 ‘흙주접’이란 말 아느냐. 흙도 주접을 떨 때가 있다. 주접이 뭐냐. 차림이 초라하게 변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 변할 것 같지 않는 땅이 즉 흙이 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흙주접’ 이다. 무슨 말이고 하니, ‘한 가지 농작물만 연이어 지으면 땅이 메말라진다.’는 거야. 그러니 니도 연이여 그 컴퓨터 일에만 연연 하면 심신이 메말라진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그 이튿날부터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보다 앞서 들로 나가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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