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편집국장 겸 상무이사)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투자유치 협약 소식이 들려온다. 충북도를 정점으로 도내 각 시·군이 입체 작전을 편 결과물이다.

도내 한 지자체는 상시 고용 500명 이상이거나 투자금액이 3000억원 넘는 기업에겐 공장부지를 공짜로 제공한다고 한다. 투자유치촉진조례를 개정해 10산업용지 매입가액 전액을 보조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3.3당 분양예정가가 45만원이라고 하니 무려 135억원에 이르는 땅을 무상 지원하는 파격조건이다.

그런데 기업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오히려 지역을 떠나려는 기업에 대해 손 놓고 있다면 뭔가. 안에서 바가지 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가.

청주의 한 우량 기업이 서울로 본사를 옮길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 충격이다.

선건축엔지니어링(이하 선건축). 청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원이 500명 이상 될 정도로 지역 기여도가 큰 기업이다. 40여년 전 건축설계를 바탕으로 감리, 건축 등으로 업역을 넓혀 지금은 감리부문에서 전국구가 됐다. 이 회사 창업주인 오선교(70) 회장은 전국감리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자신의 모교인 청주대와 많은 직원들의 모교인 충북대에 발전기금을 꾸준히 기부할 정도로 나눔 활동을 펼쳐왔다.

인센티브를 퍼주며 기업을 유치해야 기껏 100~200명 고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효자기업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회사가 소리소문없이 서울로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다. 선건축은 지난해 서울 강동구가 공모한 택지개발사업(중부고속도로 강일IC 인근) 제안서가 채택돼 머지않아 서울로 본사를 이전해야 한다. 조건에 본사 이전이 붙었기 때문이다.

선건축의 본사 이전 추진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조합하면 추론이 가능하다.

선건축은 지난해 충북도가 옛 중앙초 자리에 건립할 충북도의회 청사(9000) 설계 현상공모에서 당선됐다. 그런데 도청 업무공간 부족해소 차원에서 업무공간(3750)과 도민공간(1050)을 합친 4800규모의 도청2청사 추가건립 계획으로 수정되면서 설계 재공모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선건축 계약은 해지돼야 하고 소송이 불가피하다. 도청2청사 설계만 공모한 뒤 두 건물을 브릿지로 연결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충북도가 도의회·도청2청사 통합건물 설계공모로 방향을 튼 것이 사단을 불러 들였다.

충북도는 왜 멀쩡한 계약을 파기하려 할까.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오선교 회장은 나기정 전 청주시장이 설립한 미래도시연구원 이사장을 10여년 전부터 맡아 왔다.

그런데 이 연구원 소속 한 직원은 서울~세종고속도로 노선과 관련해 SNS와 거리 플래카드를 통해 이시종 지사와 이해찬 민주당 대표 등을 대놓고 비난해 오고 있다. 비난 수위가 지나치다는 일각의 지적 속에 그 배경에 오 회장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도지사도 사람인 이상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가 가면서도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사업하면서 정파와 거리를 둬 온 오 회장으로서는 억울한 심정을 주변에 토로하기도 했다. 돈만 쓰고 오해를 받는 지경에 이르자 얼마 전 이사장직 사퇴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건축이 서울로 가려는 것도 이런 일련의 상황이 꼬인 결과일 수 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선건축 사태는 산토끼 잡으려다 알토란 같은 집토끼를 내쫓는 일이다. 이젠 집토끼를 잡아두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도의회 청사 설계 계약은 그대로 유지하되 도청2청사만 설계를 현상공모하는 거다, 이 경우 소송을 피할 수 있고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도 물지 않아도 된다. 이시종 지사가 구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다른 하나는 강제로라도 강동구청과의 계약을 해지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돈이다. 강동구청이 사업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은 뻔하다. 충북도와 선건축이 머리를 맞대 풀어야 할 과제다. 집토끼를 잃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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