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구 전 호서대 총장

강일구 <전 호서대 총장>

(동양일보) 오월은 감사하는 달이다. 활짝 핀 꽃을 주는 자연에 감사하고 자녀와 제자들이 잘 자라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달이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스승님께 감사하는 달이다. ‘멘토(Mentor)’의 달이라 할 수 있다. 내 인생에 귀중한 가르침을 주신 분들을 기억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모와 선생은 멘토여야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멘토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잠시 고대 세계의 역사로 여행을 떠나본다.

유럽과 맞닿아 있는 고대의 많은 유적을 가진 ‘터키’라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 서북쪽에 오늘날에는 유적으로만 남아있는 트로이라는 지역에서 옛날에 전쟁이 있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이 전쟁은 여러 시대에 수많은 이들에게 문학과 예술의 영감을 줬다. 그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스파르타의 아름다운 왕비 헬렌을 데리고 도망친다. 단순한 로맨스였던 이 사건이 전쟁으로 발전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는 빼앗긴 왕비를 되찾기 위해 그리스의 영웅들에게 트로이를 공격하자고 호소한다. 그리스의 영웅들 속에 용사 아킬레스가 있고 왕이 누구보다도 절실히 원했던 용사 오디세이도 있었다.

오디세이는 헬렌이 왕비가 되기 전 그녀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돕겠다고 맹세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그는 전쟁에 나서기를 꺼린다. 이제는 남의 여인이 된 헬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전쟁 참가를 권하기 위해 온 사신 팔라메데스 앞에서 미친 척하며 응대하지 않다가 제정신임을 들켜 전쟁에 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친구 멘토(Mentor)에게 자신의 어린 아들 텔레마쿠스를 맡긴다. 전쟁 동안 오디세이는 목마(木馬)의 계략을 짜내는 등 대활약해 결국 트로이를 무너뜨리고 스파르타의 승리를 끌어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멘토는 남겨진 친구 아들의 안전을 신경 써 낯선 아무 곳이나 가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테네 도시의 신 아테나는 어느 날 멘토의 모습으로 변장해 텔레마쿠스에게 나타나 ‘아버지를 찾아 나서라’고 명령한다. 텔레마쿠스는 아테나 여신을 진짜 멘토로 여겨 먼 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려 모험의 길을 떠난다. 드디어 두 부자가 만나 집으로 돌아온다는 옛이야기다.

‘멘토’라는 단어를 쓸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아테나 여신이 분한 멘토의 역할이다. 1699년 프랑스 작가 프랑소와 페넬롱이 자신의 작품에서 멘토라는 말을 ‘신뢰할 만한 상담자’의 의미로 처음 사용하며 안전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멘토’의 의미가 확대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멘토의 의미는 안전하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을 향해 나가라는 외침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아들 텔레마쿠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섰듯 멘토는 인간이 궁극적인 목적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사람이다.

가정에는 멘토의 역할을 하는 부모가 있어야하고, 교육 현장에는 멘토인 스승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지식의 전수자가 아니라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찾게 해주는 사람이다. 부모와 스승의 역할이 바로 그렇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진정한 멘토가 되시기를 호소한다. 자녀와 제자를 울타리 안에 가두려 하지 말고 대양을 향해 넓은 세계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 벤처 정신으로 도전하도록 무장시켜야 한다. 지금은 자녀와 제자들에게 가시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숭고한 목표에 인생을 걸도록 지도하는 참 멘토가 필요한 때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