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지용회 첫 개최·6월 25일 옥천 관성회관에서 옥천군·옥천문화원 주최
(동양일보 이종억 기자) 지용제는 국내 문학제로는 드물게 같은 해에 1회를 두 번 치른 축제다. 한 번은 서울에서, 또 한 번은 옥천에서다.
정지용 시인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3월 정부의 해금(解禁) 조치로 납북작가라는 굴레에서 벗어난다. 박두진·구상 시인 등 서울의 저명 문인들로 구성된 ‘지용회’는 정지용 시인의 생일인 5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정지용 시인의 맏아들 정구관 선생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1회 지용제를 열게 된다.
지용시인의 생일은 음력 5월 15일이지만 지용회는 하루라도 빨리 지용제를 치르기 위해 음력생일을 양력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옥천에서 같은 해 6월 25일 1회 지용제가 다시 열렸다. 계기는 1987년부터 옥천문화원장을 맡고 있던 박효근(77) 전 원장이 지용시인의 맏아들 구관 선생의 초청으로 서울 첫 회 지용제에 참석한데서 비롯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지용의 고향인 옥천지역에는 시인은 물론 그의 명시 ‘향수’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박 전 원장은 “다만 나는 그전부터 시인이자 기자였던 현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으로부터 정지용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지용에 대해 알아가고 있던 중이었다”며 “구관 선생은 부친인 지용시인의 해금을 청원하기 위해 옥천에 자주 내려왔기 때문에 이때 만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옥천에서 서울의 1회 지용제에 초청된 인사는 박 전 원장이 유일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추모제 형식으로 열린 1회 지용제를 지켜본 박 전 원장은 “당시 유명 여배우 윤정희 씨가 정지용 시인의 시 ‘호수’를 낭독하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며 “지용시인의 위대함을 그 자리서 깨닫고 지용제는 서울에서 열 게 아니라 지용시인의 고향인 옥천에서 열어야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겠다 싶어 지용회에 간청했다”고 말했다.
지용회는 박 전 원장의 건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옥천으로 돌아온 그는 같은 해 6월 25일 옥천 관성회관에서 1회 지용제를 다시 치르게 된다. 정지용 시인이 6.25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는 의미에서 이날을 선택했다.
옥천의 첫 지용제에는 서울에서 1회 지용제를 치렀던 박두진·구상 시인 등 지용회 회원들이 모두 참석해 행사의 격을 높였다.
박 전 원장에게는 문화원장 재임 시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 정지용 시인과 시, 지용제를 전국에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불후의 명곡 가수 이동원의 ‘향수’가 1989년 유명 작곡가 김희갑 선생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이 노래가 나오자마자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 교수를 옥천 지용제에 처음 초청한 인물도 박 전 원장이다.
이렇게 시작한 1회부터 13회까지 지용제를 치른 박 전 원장은 재임기간 동안 지용생가복원, 지용시비건립, 연변지용제 첫 개최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오는 11일 열리는 32회 지용제9~12일) 개막식에서 공로패를 받는다. 정지용 시인을 옥천에 알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한 공로다.
박 전 원장은 “이제 옥천은 지용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용제가 32회를 맞이하면서 지용을 연구하는 학자도 많이 생기고, 양적이나 질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며 “5월 15일을 전후해 열리는 지용제때는 전국의 시인 등 문인들이 한국문학의 메카인 옥천으로 모두 모이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글·사진 옥천 이종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