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일원에서 추모제, 문학제 열려

(동양일보 엄재천 기자) “포석 조명희 선생은 월북작가가 아닙니다. 그는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이자 소설가고 아동문학가이며 평론가이며 언론인입니다”

평가절하 됐던 포석 조명희 선생에 대한 업적이 재조명되는 가운데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축제가 충북 진천군 포석조명희문학관에서 열렸다.

10일 포석 조명희 선생의 동상이 세워진 조명희문학관 광장에서는 추모제와 문학제, 학술심포지엄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유재윤 포석조명희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제 행사는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의 유족소개로 문을 열었다. 오만환 포석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조명희 선생의 약력보고도 이어졌다.

최원규 포석기념사업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조명희 선생 순국 81주년이 되는 해”라며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포석의 생애 작품세계 등이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명희 선생의 재판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상설 선생의 기록도 거의 없다. 독립운동 기록 발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추모사에서 “근대문학의 선구자 포석 조명희 선생의 숭고한 얼을 기리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선생의 자질의 피가 함께 하는 것 같아 기쁘다. 선생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문학인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양규 군의회 의장은 “포석 선생의 업적이 평가절하되는 것이 가슴 아팠다”며 “포석은 월북작가가 아니다.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운동가로 문학인으로 생애를 받쳤다. 문화인으로서 품격을 갖추는 것에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26회 포석 조명희 문학제’가 함께 했다. 행사는 (사)포석기념사업회와 포석문학회가 주최하고 동양일보와 진천군, 진천문화원, 진천문인협회, 진천예총이 후원했다.

이덕자 한국시낭송전문가협회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문학제는 박양규 군의회 의장과 양근식 진천상공회의소 회장, 김영철 한국예총 진천군지회장이 포석시 낭송으로 이어졌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이며 대금정악이수자인 박노상 월드코리아 뮤지그룹 노상풍류 대표의 ‘청성곡’ 대금독주, 이상범 포석문학회장의 ‘엷은 미소가 남긴 끝말’ 헌시낭송, 강혜경 시낭송가의 ‘경이’ 포석시 낭송과 포석조명희 전국 백일장 시상및 수상작 낭독이 펼쳐졌다.

이어 한혜숙 시낭송가의 ‘별 밑으로’ 포석시 낭소과 정환진 한국아프리카 음악춤연구소장의 아프리카 전통악기 ‘코라’ 연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최원규 포석기념사업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올해 추모제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며 “포석 조명희 선생이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리고 선생의 참뜻을 새기는 멋진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여러분 사랑합니다”고 덧붙였다.

포석 조명희 선생의 종손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은 “포석 선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불운한 시대의 한 선비가 자기 글을 쓰지 못하고 자기 나라를 찾겠다며 황야를 헤매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 생애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 씁쓸한 모습으로 살아난다”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자기의 온몸을 불살랐던 열정을, 이제 우리는 다시 깨닫게 된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그를 기리는 쇠약하지만 의미 있는 축제를 하고 있다”며 “진천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불티가 살아나고 있다. 큰 이름도 아니다. 시조를 쓰는 나약한 나순옥 시인이 불티를 지켰다”고 강조했다.

“큰 물결을 일으킨 진천의 글쓰는 몇 분은 이 건물(포석조명희문학관) 어딘가에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천 엄재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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