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이용구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동양일보) “차렷, 경례! 안녕히 계세유!”

선생님께 인사를 한 후 왁자지껄 북새통을 뒤로하고, 들뜬 마음으로 급하게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딸깍 딸깍, 들그럭 들그럭 양철 필통과 연필이 부딪히는 소리, 양은 도시락과 젓가락 노는 소리가 어우러진 행진곡을 박자 삼아 씩씩하게 집으로 향할 때면 저 멀리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타고 오시는 자전거 부대의 행렬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린 마음에도 어쩜 저렇게 자장구(자전거를 일컫는 사투리) 타시는 모습이 점잖고 색시가 가마 탄 듯 같을까, 그리고 어쩜 저렇게 잘 타실까 한편으론 자랑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길 밑 논둑으로 몸을 숨겼다. 점잖으신 행차의 행렬이 혹시 나를 태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깨어질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였다. 당연히 마음으로는 짐받이에라도 타고 싶었지만 말이다.

삼발이 자장구 말고 두 발 자장구를 처음 운전하게 됐을 때는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인 것 같다. 부모님께서 보름 이상 출타하셨다가 오신 날이었다.

그날은 아래 마지기 앞 도깨비 풍덩(개울)에서 멱을 감았다. 그립고 보고픈 부모님 생각에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수영해서인지 배가 고파 술지게미에 설탕까지 넣어 맛있게 먹고 취(醉) 기운이 돌았는데 허전함과 피곤함, 삼박자가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잘 있었어.”하며 땀을 닦아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에 잠에서 깼다.

와락 안기고 싶었지만 쑥스럽고 겸연쩍은 마음에 아무 말 없이 부스스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절을 할 때쯤에 “자장구 사 왔어. 마당에 가봐.”하셨다.

속으로는 좋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살포시 웃는 듯 마는 듯 마당에 가서 자장구를 접했다. 사실 자장구를 사 주십사 조르지는 않았지만 이웃집에 아는 형이 한 달 전부터 기어가 달린 자장구를 타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이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이, 지구 끝까지 달려갈 것 같은 용기와 희망을 싣고 내 꿈의 나래를 펴며 자장구를 탔다. 아버지께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장구를 타시는 모습을 흉내 내 보기도 했다. 이웃집 형들하고 경주도 하며 자장구 없는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기분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나의 자장구 역사는 이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추억 속의 한 기억으로 남아 아름답고 소중한 개인의 역사이다.

그때의 기분을 되살리며, 아니 아들이 도심 속에서 차단된 공간과 혼탁한 공기의 속박 속에서 낯모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자장구를 타는 놀이기구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맑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면서 자장구로 동심의 세계로 나들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할아버지가 되면 손자에게 자장구를 사주고 싶다. 조손유친(祖孫有親)의 정으로, 즐거운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옛날에 내가 부모님께 선물을 받았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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