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흥덕구 건설과 주무관 고준식

(동양일보)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가니 거실에 커다란 공기청정기가 한 대가 있었다. 아내가 요즘 미세먼지가 심해서 한 대 샀다고 했다.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면서 혼자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저게 제 일은 하나 싶은 게 신기하기는 했다.

그 이후로 많은 뉴스와 TV 프로그램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보도 내용이 쏟아져 나오고 미세먼지 관련 각종 물품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뉴스를 보니 미세먼지가 심하긴 한가보다, 내가 그동안 둔했나 보다 생각했다.

심해진 미세먼지로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내려져 차량 2부제가 실시됐다.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란 일정 기준 이상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예측될 경우 각 지자체의 시‧도지사가 자동차 운행 제한, 배출시설 가동 조정 등의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다.

“마스크 챙겼어? 집에 올 때도 꼭 마스크 해.”

아내가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나에게도 출장 때 쓰라며 마스크를 챙겨 주는데 답답한 게 싫다고 다시 내려놓고 올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보니 아이들 방에도 공기청정기가 생겼다. 거실에 있는 것 갖고는 집 안 전체 공기 청정이 안 된다며 아이들 방에 두 대를 더 구입해 우리 집에 공기청정기는 세 대가 됐다. 이쯤 되니 너무 아내가 오버하는 건 아닌가 생각됐다.

“집에서만 공기청정기 틀면 뭐 해? 학교 가면 아무것도 없는데.”

한 마디 했더니 아내가 큰 소리로 “아무것도 모르면 말을 말라”라고 핀잔을 준다. 사실 나는 작은 금액이 아니다 보니 금전적인 문제가 먼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거니깐, 더 큰 싸움이 될 수도 있어서 조용히 아내의 의견에 따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내와 같이 뉴스를 보다 임산부의 태반에서도 미세먼지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오니 내게 저것 보라고, 미세먼지가 이렇게 무서운 거라고 더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심지어 공기 순환 장치가 완비된 새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하는데 더 얘기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거 같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조용히 듣기만 했다.

사실 예민한 엄마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유난스러움이 내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 기본이었던 것이다. 아내의 유난스러움 덕분에 아이들은 외출 후 청결에 힘쓰고 야무지게 미세먼지방지 마스크를 빈틈없이 쓰는 노련함을 익혔다.

덕분에 나는 각종 미세먼지 확인 어플과 사이트를 노련하게 찾아 외출하기 좋은 날을 고를 수 있는 슈퍼컴퓨터 능력을 키웠으며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던 차량 2부제도 조금 일찍 집을 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부지런함을 배웠다.

미세먼지 관련해 많은 원인 및 대책, 각종 예방 방법, 계획 등 결코 쉽지 않은 숙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쉽지 않다고 해서 피할 수 없으니 이제 나도 예민한 아빠가 돼야겠다. 이 많은 숙제는 과연 누구의 숙제일까? 아내의 숙제도 아닌 아빠의 숙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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