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2019충북여성백일장이 지난 11일 오전 10시 청주삼일공원에서 열렸다. 여백문학회가 주최·주관하고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가 후원한 이 백일장은 참신하고 역량 있는 여성문학인을 발굴, 충북지역 여성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상식은 같은 날 오후 4시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열렸으며, 모두 18명이 수상했다. 시 부문은 장원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수필 부문 장원 수상작과 수상자 인터뷰,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장원작

오월이 오면

전보라



오월이 오면 가게마다 색색의 화려한 장식을 단 카네이션들이 고갤 내밀고 있다. 스승의 날에 누군가의 가슴에 달릴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진다.

나도 그런 카네이션을 달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사범대를 졸업했으나 교단에 반드시 서리란 다짐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학교는 더는 선생님을 원하지 않게 되었고, 난 그 흐름에 휩쓸려 임용준비생 생활을 연장하고 있었다. 한 발 디딜 틈도 없다고 생각할 즈음 한 학교에서 보름 동안 일해 달란 연락이 왔다.

그때가 바로 오월이었다.

중간시험이 막 끝난 학교는 여느 학교가 그렇듯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곧 있을 체육대회 계획을 세우기에 바빴고, 원래 선생님 대신 수업에 들어 온 이방인을 못 본 척했다.

나는 그곳에서 멍청한 얼굴로 교과서만 들여다보다가 교탁을 살짝 치며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아뿔싸! 내가 수업할 부분은 하필이면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문법 단원이었다. 날 불러준 고마운 학교에서 수업을 날로 먹을 수 없단 생각에 분필을 꼬옥 쥐었다. 어찌어찌 수업은 이어갔지만, 아이들은 뚱한 얼굴로 내 원맨쇼를 지켜보거나 쪽지를 돌리며 킬킬거렸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며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생각한 그림과는 너무도 달랐던 수업에 마음이 답답해지고 날 뚱하니 바라보던 아이들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난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아이들은 불성실하게 수업을 듣는지, 혹시 내가 임시 선생님이라 우습게 보는 건지 못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옹졸한 의문을 되새김질하다 다음날 1교시 수업에서 더 무거운 의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동그랗고 투명한 두 눈으로 왜 선생님 이름을 말해주지 않냐고 물어왔다.

그제야 첫 날 수업하기 바빠 내 이름은커녕 아이들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코끝이 찡해졌다.

차갑고 권위적인 선생님이 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나도 그들처럼 학생들 탓이나 하고 있었다. 몪가지 붉게 달아오른 상태로 부랴부랴 출석부를 펼쳤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자 아이들이 내게 꽃처럼 웃어주었다. 그 수업 이후로 나는 먼저 이름을 말해주고 인사하며 웃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도 이방인을 반기기 시작했다. 수업도 꽃이 피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보름 동안 개나리처럼 밝고 귀여운 아이들 사이에서 전에 없을 행복을 누렸다.

카네이션은 누군가 나를 존경해서 주는 것이 아니었다. 교사 스스로가 꽃을 틔우는 것. 같은 노력을 통해 가슴 속에 키워야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수업에 헌신하면 피어나는 꽃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지냈던 나를 아이들이 일깨워 준 것이다.

나는 아직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물론 힘들 때도 있고 아이들의 말썽이 머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오월에 느꼈던 감정들을 생각하며 마음속 카네이션에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린다.

언젠가 오월에 꽃 피우기를 기다리면서.

 

 

●장원 수상자 전보라씨

“우연한 기회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어요. 상을 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이 얼떨떨합니다. 평범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해주시니까 뿌듯하기도 합니다.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2019충북여성백일장 수필 부문 장원 수상자인 전보라(29·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씨. 그는 기간제 임시교사의 첫 교단경험담을 풀어낸 수필 ‘오월이 오면’으로 이번 대회 최고상을 차지했다.

전씨는 친구의 권유로 이번 백일장에 참가했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사회초년생은 시행착오 끝에 깨닫게 된 소중한 것들을 진솔한 표현으로 원고지에 써내려갔다. 자신에게는 잊히지 않는 특별한 경험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몰랐기에 입상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5월은 특별합니다. 기간제 교사였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것도 5월이었고, 스승의 날도 있는, 제 꿈과 깊은 연관이 있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꿈을 더 굳건히 해준,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는 특별한 경험을 글로 썼어요.”

학창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는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때부터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선생님이 되면 나도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생각에서다.

중학교까지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지만 ‘교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기면서 작가의 꿈을 잠시 내려놓았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문학을 향한 열망도 다시금 피어났다. 이번 대회를 통해 진정성 있는 글을 써야한다 것을 배웠다는 전씨. 그는 교사의 꿈과 문학의 꿈 모두 이룰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우선은 교사가 되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그렇다고 문학을 놓지는 않을 겁니다. 좋은 소재를 찾아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글쓰기 공부를 계속 할 것입니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면 더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고 싶어요. 뜻 깊은 기회를 선물해준 여백문학회와 동양일보, 뒷목문학회에 감사드립니다.”

전씨는 청주봉명고를 졸업하고 대전 한남대에서 교육학과 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박장미 기자



●심사평

올해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작품이 올라왔다.

각 부문에서 예심을 거친 20여 편의 작품을 놓고 재심의 과정을 거쳐 최종심에 올렸다. 최종심에 오른 부문별 10편의 작품을 놓고 심사위원들이 심의를 거듭한 끝에 수상작을 가렸다.

시 부문부터 말씀드리면 아쉽게도 장원을 낼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시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미약했고, 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시적 장치, 즉, 비유와 은유, 함축과 반전 같은 장치들이 제대로 결합이 되지 않아 시가 지녀야 하는 시적인 ‘맛과 멋’을 드러내는데 충분치 못했다. 단순히 산문을 행 가름해서 시의 형태를 취한 듯 한 작품이 그 예다.

워즈워드는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바탕을 둔다.”고 했다. 시는, 말과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정서를 바탕으로 그리는 감동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차상 김혜영씨의 작품 ‘산책’은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아이를 업고 산책길에 나선 따뜻한 감성을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새순 보다 서둘러 나오는 무량의 옹알이/온 세상이 환하다’와 같은 표현과 끝 연의 ‘발자국마다 새 봄이 가득 고인다’와 같은 구절이 시의 맛을 살리고 있다.

수필부문은 예년에 비해 나아졌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직도 수필의 분량이라든지, 원고지 사용법, 맞춤법, 띄어쓰기 등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지만, 장원 작이 경합을 벌일 만큼 좋은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장원 작 전보라씨의 ‘오월이 오면’은 기간 제 임시교사의 첫 교단경험담이다. 표현이 다소 어색한 부분은 있었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게 된 벅찬 감정을 진솔한 표현으로 끝까지 눌러 삭힌 점이 돋보였다.

차상 작 김자영씨의 ‘오월이 오면’ 역시 우열의 가리기 힘든 수작이다. 능숙하고 정제된 표현력이 오히려 기성작가의 그것처럼 느껴져 신선함을 가렸다.

고심 끝에, 여백문학이 지향하는 신선한 소재와 감동 쪽에 더 비중을 두어 장원 작을 선정했음을 밝힌다.

‘좋은 마음이 좋은 문장을 만든다.’ 심사 총평으로 들려주고 싶은 키워드다.

마음자리를 잘 가꾸는 일, 글을 쓰는 일이 고된 작업이지만 더 큰 즐거움으로 보답 받는 길임을 강조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수상자들을 축하드리며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가나다 순)

시 부문

△나기황(시인) △신영순(시인) △윤현자(시조시인) △조철호(시인)

수필 부문

△김길자(수필가) △김송순(동화작가) △박명애(수필가) △박희팔(소설가) △안수길(소설가) △유영선(동화작가) △조성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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