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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먹을알
풍향계/ 먹을알
  • 동양일보
  • 승인 2019.05.14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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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어떻게 살 것이냐 보다는 어떻게 죽을 것이냐가 문제라고 한다.

이에 대해 한 노인장이 자조어린 말로 내뱉는다. “다치면 길게 죽는댜.” 이에 다른 노인장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길게 죽다니 무슨 말여?” 이 말에 또 다른 노인장이 얼른 받는다. “아따 이 사람, 우리 같은 늙은이들 비실비실 넘어지기 일쑤여서 잘 다치기 십상인디, 한번 다치면 금방 낫지도 않고 오래오래 고생고생하다 죽는다 이거여.” 그러자 예서제서 한마디씩이다. “길게 죽으믄 젤로 자식들한테 환영 못 받어 얼른 죽어야제.” “그게 맘대로 되간.” “길게 죽어야 돈 버는 데가 있지.” “그게 워디여?” “다치면 치료해 주는 데, 거기 사람들은 다친 사람들이 오래 끌어야 돈 벌잖여.” “이 사람, 난 또 무슨 소리라고. 어디 가서 당최 그런 소리 하덜 말어. 당사자들이 들으믄 들고 일어날 소리 하구 있네.” “우수개소리여, 한 번 웃자고 해본 소리 가지구 뭐 그리 펄쩍 뛰노.” “아무리 그래도 듣는 사람들은 오해하기 꼭 알맞구먼.”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못 했네. 이제 됐는가?”

이야기가 삐딱하게 나가 한 동안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도는데, 처음 말을 꺼냈던 노인장이 말머리를 돌린다. “윗동네 새말 말여, 3년 전에 혼자된 허가 부인 있잖여. 그 과수댁이 한 말이 온 동네를 들썩이고 있다누만.” “무슨 말인디?” “밑도 끝도 없이 ‘남편 죽고 처음’이라고 했다는겨.” “아니 그럼 그 과수댁 바람이라도 났다는겨?” “확실한 건 모르제, 하지만 남편 죽고 처음이라니 무슨 뜻이겠는가?” “그야 남편 죽고 처음으로 그 맛 봤다는 것 아녀?” “설마 그럴라구 남편 살아 있을 때나 죽어 없을 때나 얼매나 조신한 사람이라구 했는디.” “사람일 모른다잖여, 그 전과 그 후의 맴이 같을 순 없다니께.” “근 그럴지도 몰러, ‘물가에서 노는데 신발 안 젖겠냐.’ 이거여.” “그러니께 자네 말은, 남자들 틈에 끼어 일하자니께 제절루 맘이 달라지기라두 했다는겨 뭐여?” “듣자듣자 하자니께 영 거북스러워 죽겠네. 그 댁네 그럴 사람 아녀. 신랑 죽자 할 수 없어 인근 공장에 가 일하지만 그걸 그런 데다 끌어 붙이믄 안 되지.” “그럼, 남편 죽고 처음이라는 건 뭐여 도대체?” “건 아마, ‘남편 죽고는 이렇게 힘든 일 해보기는 처음’이라는 말일 게야. 그걸 푸념한 것일 틴디 엉뚱하게 이상한 뜻으루 해석들 하니 안타깝네.” “그려 이 사람 말이 더 일리가 있네. 그러니 그말 가지구 우리들까지 찧고 까부르지 마세나. 사는 데까지 열심히 살고 떳떳이 생을 마치려는 사람에게 욕되는 말은 말아야제.”

그래서 또 이것도 여기서 일단락되었는데, 읍내사정에 밝은 노인장이 새 소식을 전한다. “읍내 그 ‘먹을알’ 말일세, 이제 사람 됐다누만!”

‘먹을알’은 읍내에 사는 사내의 별명이다. 아파트나 개인주택뿐 아니라 논밭이라든가 대지 등을 소개해주는 부동산중개업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손님을 소위 물어다 주고 그 구전의 일부를 얻어먹는 일, 또는 자신이 직접 삼밭이며 고구마 밭 따위를 땅주인과 업자에게 소개해 주고 구전을 챙기는가 하면, 심지어는 각종 공장이며 농장 또는 대농가에 외국인을 비롯한 각 마을 부인들과 할머니들을 대주고는 소개비를 받는 등, 이렇게 자기 돈 하나도 들이지 않고 이리 왈 저리 왈 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붙은 별명이 ‘먹을알’이다. 이건 이태 전에 타계한 읍내 노인장이 붙인 별명으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생기거나 차지하게 되는 소득’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원래는 ‘노다지는 아니지만 금이 많이 박힌 광석이나 광맥’을 일컫는 말에서 생긴 말이라는 거다. 그는 이렇게 하여 그동안 모은 돈도 많다는 소문이다. 그러자니 나쁜 말도 나돌았다. 물불 안 가리고 자린고비처럼 모은 돈 꼭 움켜쥐고만 있으면 뭐하느냐고, 훌 번드르르한 말로 사기 쳐 제 배만 불리면 뭐하냐고, 그러니 여태까지 중년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있지 않느냐고.

“그래 그 먹을알이 어떻게 사람이 됐다는겨?” “읍내 경로당에 쌀도 갖다 주고 요 얼마 전엔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관광도 시켜줬다누만.” “그리구?” “그리구 양로원 요양원도 찾아갈 거랴.” “거 정말 사람 됐구먼. 근데 왜 그리 변했을까. 혹 누가 중매라도 서 줄까 해서인가?” “거 삐딱하게 생각 말구 좋은 쪽으루 생각하게나.” “어이구, 또 한방 먹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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