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요즘 북한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마음이 무겁고 허탈하다.

서로 잘해보자고 받쳐주고 성원해 줬는데 그 공도 모르고 신의를 저버렸으니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의는 기대했건 만, 끝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줄 수밖에 없는 남측의 처지를 이용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한 민족이니 잘 타일러서 끌어안고 가야 할 상대 아닌가.

재선을 앞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라는 걸작을 만들어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있다.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 역시 한반도 조기 평화 정착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 하루라도 빨리 실질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쫓기고 있다. 북한은 이런 미국과 남한을 저울에 올려놓고 유불리를 재고 있다.

우리는 북측의 이같은 전략 구사가 오래전부터 봐 온 상투적이지 않길 바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매듭이 풀려가는 듯 하면서 희망을 안겨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잇단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에 공감하는 등 대화 모멘텀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의 무력시위는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아가 요즘 북한이 잇따라 남한을 비판하는 것도 남북 관계와 평화유지에 전혀 됴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좀 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행동도 자율적일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히지만 너무 잦으면 대북 여론만 악화시킬 뿐이다. 북측은 즉각적인 개성공단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으나 남북경협문제는 남측 혼자서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심히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이런 식의 긴장고조 행위와 대남비방이 계속된다면 남한 사회에서 싹 터 온 작은 신뢰마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봐 온 북한은 럭비공 같은 존재였다. 한반도에 또다시 피를 흘리게 해선 안된다는 전국민적, 전세계적 염원을 이용해 긴장감을 조성해 온 게 한두번이 아니다.

다행이라면 북한의 무력시위를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여유다. 미국내 대북 강경론자의 목소리가 비등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대북협상의 문을 여전히 열어놓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미 국무부대북정책특별대표도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의 무력시위에도 인내를 갖고 협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비난을 무릅쓰고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말하지 않은데는 어떻게든 판을 깨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려는 한·미 양국의 고뇌를 엿보게 해 준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정부의 입장이 난감해지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대북 인도적 지원이 정세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됐으면 한다.

문제는 우리에 있다. 우리나라 주요 지역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사정권에 들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반도 평화 유지에 힘쓰면서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군의 전투력이 북한을 압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숱한 희생을 감수하며 전쟁에서 이긴들 무엇하랴. 성처만 남을 것을.

3년1개월간 지속된 6.25전쟁때 인명피해는 민간인 포함, 모두 450만명에 달한다. 이중 남한에선 민간인 100만명 포함해 200만명, 공산진영 역시 민간인 100만명 포함, 250만명으로 추산된다.

군인 전사자는 한국군 22만7748명, 미군 3만3629명, 기타 유엔군 3194명이며 중국군과 북한군 전사자 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쟁기간중 한국은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됐다.

재래식 전쟁에도 피해가 이럴진대 핵과 미사일을 이용한 현대전에선 상상 자체로 끔찍하다. 전쟁에서 이겨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너와 나, 여·야 정치권,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 진영간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이 땅에서 전쟁을 막는 일이라면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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