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 풍경과 이야기가 있는 달달한 추억

단양 구경시장 입구.
구경시장 풍경.

(동양일보) 밭가는 소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새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뒤돌아보고 머뭇거리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망설인다. 왜 내게 이토록 힘겨운 노동을, 슬픈 이별을, 뼈아픈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없다며 구시렁거린다. 왜 내가 하는 일마다 시련으로 가득하고 되는 것이 없으며 적들이 내게 총구를 겨누는지 알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린다.

아픔으로 기억되는 5월에도 꽃은 피고 바람이 불며 햇살은 눈부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흔들린다. 그렇지만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흔들리고 상처받으며 새 순 돋는 성장통을 허락한다. 견딤이 쓰임을 만들고 불멸의 향기를 피운다. 그러니 뒤돌아보고 머뭇거리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망설이지 말자. 모든 풍경에는 상처가 깃들어 있으니 이 모든 극적인 순간을 받아들이자. 앞만 보고 새 길을 만들며 가라. 그 길은 누군가에게 희망의 길이 되리라.



마음이 심란할 때는 길을 나선다. 단양팔경을 유랑했으면 아홉 번째는 구경시장을 들러야 한다. 그래서 구경시장이다. 구경시장은 1770년대 동국문헌비고에 소개될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다. 충주댐 건설에 따라 1985년 단양읍내에 있는 지금의 터에 새 둥지를 마련했는데 단양의 특산품과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백미는 마늘과 아로니아를 넣은 만두와 순대, 통닭과 산채정식이다. 모두 단양의 특산품인 마늘을 넣었으며 향과 맛과 식감 모두 남다르다. 흑마늘 통닭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여기가 맛집이구나 싶어 나도 줄을 섰다. 기다림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흑마늘과 양파를 함께 넣어 튀겼는데 바삭거리는 식감과 은은한 마늘향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마늘순댓집만 6곳이 있다. 통마늘을 비롯한 채소와 신선한 돼지 선지를 버무려 창자에 욱여넣는 작업을 식당에서 한다. 시간대가 맞으면 그 풍경을 볼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다양하다. 선지를 듬뿍 넣은 순대, 청양고추를 넣어 매운맛에 힘을 준 순대, 아로니아를 넣은 순대, 마늘을 많이 넣은 순대 등 입맛따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구경시장에는 흑마늘을 넣은 찰보리빵, 마늘기름을 넣어 만든 마늘만두, 마늘떡갈비, 흑마늘호떡 같은 주전부리도 많다. 온통 마늘 천국이다.

예로부터 마늘은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 했다. 냄새 하나를 빼면 백가지의 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향도 나쁘지 않다. 알싸하고 독특한 향이 음식의 군내를 잡아줄 뿐 아니라 무디어진 촉수를 살려주기도 한다. 황토마늘, 육쪽마늘 등 단양에서 생산된 마늘은 인체의 면역력과 저항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다. 보관성이 뛰어나며 알이 단단하고 매운맛이 강하다. 매년 6~7월에 수확을 하는데 생산량이 전국 1%도 채 안되지만 한지형 마늘 중에서 빼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마늘 고장으로 알려진 경북 의성에도 없는 마늘연구소가 있을 정도다. 구경시장에는 120개의 점포가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마늘로 무장한 점포다.



시장 골목마다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새싹들이 가득하다. 5월은 몸도 가볍지만 입이 즐거운 계절이다. 얼었던 대지를 비집고 싹을 틔운 나물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향내, 아삭아삭 탄력 있는 식감은 눈과 입을 호강시킨다. 옻순, 참죽순, 음나무, 두릅순, 가죽나무순…. 맛도 다르고 향도 다르며 식감도 다르다. 데치고 무치고 장아찌 담그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옻순과 가죽나무순을 좋아한다. 옻순은 싹 나고 일주일 이내에 먹어야 한다. 삼겹살을 싸 먹어도 좋고 백숙에 넣어 데쳐먹어도 좋다. 건강보감이다.

매달 1‧6‧11‧16‧21‧26일에 열리는 오일장에는 전국에서 온 장꾼을 구경할 수 있어 그 재미가 솔솔하다. 단양팔경도 식후경이다. 단양의 비경을 둘러보았다면 마무리는 구경시장에서 해야 한다. 먹는 재미, 사는 재미, 눈으로 보는 재미가 함께 한다. 인생 뭐 있나. 오늘 하루 달달한 여행이면 그만이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사고와 창의적인 영감과 가야할 길을 찾는다”고 했다. 단양을 여행하면서 삶의 여백이 생기고 사유의 숲이 더욱 깊어지면 좋겠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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