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음성 동성초등학교 교사

 

박효진 음성 동성초 교사

(동양일보) 경찰 사이카의 경적은 언제 들어도 정신을 번쩍 나게 하지만, 수능 시험 당일 울리는 사이카 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절박하다.

운전하는 경찰관도 그 뒤에 올라탄 학생도 마법의 양탄자와 같은 오토바이에 올라타 축지법과 같은 순간의 마법을 부려보고 싶을 테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수험장 철문이 닫혀 있다면 제아무리 알라딘이라 할지라도 어쩔 도리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시간은 병 속에 있는 알라딘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소중하지만 어떤 한계선이 존재하는 시간은 더욱 그러하다.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과학을 주제로 한 그림 그리기 대회를 실시했다. 주어진 시간은 세 시간. 구상하고 밑그림에 색칠까지 하려면 빠듯한 시간이다. 이를 고려해 미리 구상을 해오라는 과제를 주었고 덕분에 시간을 절약한 학생도 있었다. 연필을 잡고 부지런히 주제를 그려내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해 생명력을 더하고 있었을 때쯤 시간은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얘들아, 이제 한 시간 남았으니까 색칠 안 한 사람은 색칠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은 하나, 둘 채색을 시작했고 그림 그리기는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케치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 색칠해야 하지 않아?”

친구가 뒤돌아 물었지만 두 눈과 손은 여전히 밑그림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수준 차이가 꽤 나 보이는 놀라운 작품을 그려내고 있었다.

“와! 진짜 잘했다. 선생님, ○○이 그림 좀 보세요. 그림 진짜 잘 그렸죠?”

멋진 재능을 가진 알라딘이 호리병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이제 색칠을 해야 하는데.”

○○이는 다음 날 아침까지 숙제로 해 오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반 아이들을 둘러보니 색칠을 시작한 학생도 있었지만, 마무리 작업까지 완벽하게 마친 학생이 없어 내일 아침까지 숙제로 해 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교탁 위에 미술 작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미완성의 작품들이 색깔 옷을 입어 새롭게 태어났다. 다양한 학생들만큼이나 다채로운 작품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저 작품을 집에 두고 왔어요.”

“그래? 그럼 아직 수업 시작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집에 가서 가지고 오렴.”

예전 같으면 ○○이의 말을 믿지 못해 과제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가 숙제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몹시 아쉬워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천천히 다녀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개구쟁이 한 아이가 “○○이 숙제 안 했을 것 같아요.”하고 킥킥댔다. “아니야, 했을 거야.” 나는 여전히 ○○이가 숙제를 꼭 했기를 바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이는 종이를 얼른 사물함에 넣었다. 기대와는 달리 ○○이 손에 들린 종이는 어제 그대로였다. 못 본 척 수업을 하려는데 개구쟁이가 또 한마디 거들었다.

“선생님, ○○이 역시나 숙제를 안 했는데요.”

○○이가 부끄러워질까 미술 숙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더 이상 하지 않고 일과를 마쳤다. 그리고 아침에 숙제를 낸 학생 중에서 대회 수상자를 선정했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를 한 오후, 회의가 있어 교무실을 다녀왔는데 ○○이가 여전히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 지금 색칠하는 거야? 너 학원가야 하잖아.”

○○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색칠에 몰두했다.

“선생님, 저 상 받을 수 있어요? 저 꼭 상 받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색칠하고 있는 거예요. 학원보다 이게 더 중요해요.”○○이는 채색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준이 대단해 나 역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감상을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함을 되찾을 때쯤,

“○○아, 정말 미안한데, 상은 벌써 뽑았어. 오늘 아침에 낸 사람 중에서. 하지만 네가 상을 못 받는다고 해도 네 실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너무 슬퍼하지 마. 선생님이 네 실력을 봤고, 너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이는 훌쩍거렸다.

“선생님, 저 꼭 상 받고 싶어요.”

철문 앞을 서성이는 수험생처럼 아이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상에 대한 갈망이 뒤엉켜 눈물이 되어 흘렀다. 아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알기에 더욱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아, 어떤 일이든 정해진 시간이 있다면 꼭 지켜야 한단다. 오늘 비록 네가 상을 받지 못해 슬프더라도 오늘의 일을 계기로 네가 가진 열정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이의 열정 앞에 냉정한 말을 건네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공정을 지키기 위해 온정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아, 선생님이 오늘 너에게 마법의 양탄자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