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풍물시장 좌판에 놓인 / 작은 놋요강 하나가 / 흐린 눈을 사로잡는다 / 명아주 지팡이 짚은 / 할아버지는 / 그놈을 닁큼 산다 / 기저귀만 떼면 / 손자를 도맡아 키워준다고 / 흰소리 하도 했으니 / 미리 알요강 하나 마련한다 // 내년 이맘때나 / 손자가 기저귀를 떼겠지만 / 문갑 위에 모셔 놓은 / 배꼽뚜껑도 예쁜 / 알요강에서는 // 벌써 향긋한 지린내가 난다 / 손자 오줌 누는 소리도 / 아주 잘 들리는 / 동지섣달 / 긴긴밤” (시 ‘알요강’)

오탁번(77·사진·제천시 백운면 애련리198) 시인이 시집 <알요강>을 펴냈다.

지난해 소설 전집으로 독자들을 만난 후 6개월여 만에 펴낸 이 시집은 4부로 구성, 모두 76편의 시가 담겼다.

‘알요강’은 ‘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이라는 의미다.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그것에 스며있는 사상과 정서를 시 ‘알요강’에서 풀어놓는다. 기저귀도 떼지 못한 아이인데, 손자를 돌볼 생각에 들떠 요강부터 ‘닁큼’ 사서 문갑 위에 모셔 놓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손자의 ‘향긋한 지린내’를 상상하며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지날결’, ‘노루잠’, ‘건들장마’, ‘잘코사니’처럼 다채로운 고유어를 활용한 시를 담았다.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 시어가 가진 의미와 스며있는 정서를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이승원 문학평론가는 “고령의 연치에도 시들지 않는 뛰어난 유머 감각과 우리말에 대한 지극한 헌신은 남이 따르지 못할 경지에 있다”며 “그가 고유어를 통해 펼쳐내는 사람살이의 이모저모는 자신이 거처하는 원서헌 주변의 일들이다. 일상의 작은 일을 통해 인정의 정겨움과 다사로움을, 때로는 인간사의 애환을 맛깔나게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오 시인은 1960년대 신춘문예에서 시와 소설, 동화 모두 당선작을 내며 ‘3관왕’에 올랐다. 고려대 재학중이던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됐고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엔 시가, 졸업 이듬해인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선 소설 부문에 당선돼 화제가 됐다.

오 시인은 1943년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3년 고향에 내려와 사재를 털어 옛 백운초 애련분교에 원서문학관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현재 고려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사)한국시인협회 평의원이기도 하다.

고려대 영문과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사 교수부(1971~1974)와 수도여사대(1974~1978)를 거쳐 1978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현대문학을 강의했다. 1966년 동아일보(동화), 1967년 중앙일보(시), 1969년 대한일보(소설)에서 당선작을 내며 신춘문예 ‘3관왕’에 올라 화제가 됐다. 시집으로 <아침의 예언>(조광, 1973),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청하, 1985), <생각나지 않는 꿈>(미학사, 1991), <겨울강>(세계사, 1994), <1미터의 사랑>(시와시학사, 1999), <벙어리장갑>(문학사상사, 2002), <손님>(황금알, 2006), <우리 동네>(시안, 2009), <시집보내다>(문학수첩, 2014)가 있다. 이외에 <처형의 땅>(일지사, 1974), <내가 만난 여신>(물결, 1977),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문학사상사, 1988) 등의 창작집을 냈으며 한국문학작가상(1987) 동서문학상(1994) 정지용문학상(1997) 한국시협상(2003) 김삿갓문학상(2010) 은관문화훈장(2010) 고산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현대시학사, 202쪽, 1만원. 박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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