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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오월, 우리의 소설
풍향계/ 오월, 우리의 소설
  • 동양일보
  • 승인 2019.05.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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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 오월이다. 장미까지 피어 세상이 휘황하다. 좋은 시절 물오른 나무마다 꽃이 피어나고 있다. 피는 한 때가 있으니 꽃이 질 어느 때가 오기도 할 것이다. 봄꽃은 기특하고 가을꽃은 장엄하게 제 태생대로 꽃피우고 열매 맺고 제 명대로 살아낼 것이다. 나고 지는 일이야 어쩔 수 없으니 저마다 제 꽃 저대로 피우며 한 세상 잘 살아내는 것이 목숨 받은 것들의 숙명이겠다. 나고 죽는 과정을 보면 별 도리없이 죽는 시간 앞두며 사는 공동 운명이 보이는데 각자 살아가는 풍경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어느 곳 누구는 먹는 걸 줄여 살을 빼야 하고, 어느 곳은 굶기를 먹듯하니 배부른 걸 소원으로 삼기도 한다. 한 교실에서 누구는 집밥보다 못해 급식을 타박하고 어느 어린 아이는 방학이면 먹기 어려워지는 점심이니 가슴 쓸어내리며 받아들기도 한다. 어렵게 살아 본 누구는 무상급식이 안된다고 외치고, 역시 어려운 시절 살아낸 누구는 그러니 아이들 밥이라도 차별없이 먹이자고 한다. 80년대 오월 광주의 오월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그렇다. 어떤 이는 독재에 대한 저항을 말하고 다른 이는 북한을 들이댄다. 청문회에서는 그만하고 용서하라는 말이 난분분한 적도 있다. 우리 현대사의 큰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태도만 부각된다. 피해자의 고통, 피해받은 사실, 가해자의 폭력은 증발해버린다.

해마다 오월이면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가 새삼스러워진다. 몇 십년 전 국민의 재산과 국가를 지키라고 맡겨놓은 군인이 민간인을 쏘아댄 일의 경위가 이직도 명료하지 않다. 이청준은 누구에게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사라지고 용서해야 한다는 당위를 들이밀면서 피해자의 태도나 문제삼는 오월 광주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다.

소설은 한 가정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몸도 정신도 허약하지만 착해서 부모 말을 잘듣는 아이가 유괴된다. 아이를 죽여놓고 돈을 요구하다 잡힌 사람은 아이를 맡아 가르치던 학원 원장이다. 그 원장은 곧 감옥으로 가고 아이 엄마는 원수에게 욕 한마디도 할 수 없이 국가가 맡아서 격리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종교단체는 용서를 이야기한다. 용서해야 아이가 좋은 곳에 간다는 명분을 내거는 것이다. 어렵게 용서를 결심하지만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아이가 죽었다는 피해는 있는데, 아이 엄마에게 용서받을 대상은 없다. 모두가 좋은 이야기를 한다. 교회는 용서하라고 하고, 국가는 벌을 준다고 범인을 격리해 놓고, 범인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홀로 평온을 누리는 정황인 것이다. 국가권력도 종교이념도 구체적인 범인의 사과도 아이 엄마에게는 적실하지 않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용서할 대상도 용서할 방법도 사라져버리게 된 셈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소거되고, 가해자에 대한 용서만 이야기되는 그 이야기는 피해자에게 무도하고 참혹하다.

성경은 나그네를 대접하고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라고 하신다. 나그네는 고단한 길에서 당도한 곳의 사람들이 해를 끼치면 당할 수 밖에 없고, 과부와 고아는 가장의 부재라는 슬픔 뿐 아니라 생계의 수단을 찾을 수 없는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선하게 대할 것을 말한다. 가까운 우리 집단사에서 80년 광주에서 우리 군인에게 가족을 잃은 이들과, 수학 여행 보냈다가 배가 뒤집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이 시대의 과부와 고아일 수 있다. 어떻게 해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고통 속에 놓인 이들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당한 이가 하는 것이고, 용서는 무엇에 대해 누구를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니 용서하라고 잊어버리라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강요해서 슬퍼하는 걸 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폭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땅한 위로를 보내는 것도 못하겠고, 과부와 고아의 피해와 슬픔에 공감도 못하겠다면 소음 내지 말고 조용히라도 해야 한다. 식구를 잃고 우는 상복입은 이들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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