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동양일보) 그것은 참으로 기막힌,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그러면서도 가슴 저미는 하나의 커다란 감동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경북 어디선가(지명은 잊었다) 한 비인간적 밀렵꾼에 의해 두루미(야학) 한 마리가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마리의 두루미가 총에 맞아 죽은 두루미를 애끓게 부르며 밤새 울다가 그만 함께 따라 죽었다. 일종의 순사(殉死)였다. 두루미는 두 마리로 어느 것이 수컷이고 어느 것이 암컷인지 알 수 없었으나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가슴에 새빨간 피를 뿜고 죽어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피를 뿜고 죽은 두루미를 두 발로 얼싸안은 채 그 두루미의 목에 자기 목을 친친 감고 죽어 있었다. 극애(極愛)로써 죽음을 같이한 지고지순한 순사였다. 필자는 이 가슴 저미는 실화를 어느 잡지에서 읽고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웠을 뿐만 아니라 너무도 큰 충격과 감동으로 여러 날을 몸살 앓듯 심한 동계 속에서 지내다가 ‘학의 주검’이라는 소설을 써서 발표한 바 있지만, 아직도 그 두루미를 생각하면 숙연한 자세가 돼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우리가 한낱 동물이라고 업신여기는 미물, 그 미물이 제 짝의 주검을 따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해내지 못하는 순사를 했으니 어찌 감동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도에 의하면 충북도가 순환수렵장으로 개장된 이후 전국에서 몰려든 일부 몰지각한 엽사들의 불법 포획이 자행되는 바람에 조수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고 한다. 특히 야간에 서치라이트를 이용한 남획과 독극물 사용 및 함정 옥노(올무) 등의 마구잡이식 포획으로 조수 보호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한다. 얼마 전엔 곰을 우리에 가둬놓고 산째 쓸개를 뽑는 잔인한 행위가 있더니 이제는 순환수렵장의 개장을 구실로 비인간적 잔혹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한데 있어 우리를 경악시키고 있다. 그것은 노루나 멧돼지 같은 산(山)짐승을 잡아가지고는 산째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목줄기를 따서 흘러나오는 생피를 마시는 일인데, 이럴 경우 그 짐승의 피가 다 나올 때까지 드라큐라처럼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이다. 이때 노루는 그 선하디 선한 얼뜬 눈을 껌벅이며 애처로이 울부짖고 멧돼지 역시 목통 터지게 소리쳐도 드라큐라삼신이 들린 인간들은 좋아라 희희낙락하며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빨아먹는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노해 마지않는 것은 이들(드라큐라)이 제 딸 혹은 제 손녀 같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쩌려고, 어떻게 하려고 이런 따위 짓을 시퍼런 하늘이 내려다 보는데서 저지르는지 알 수가 없다. 딸 혹은 손녀 같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승용차에 태워가지고 다니며 노루나 멧돼지의 산피를 먹여 대관절 어쩌자는 것인가. 그 순하디 순한 눈망울이 가련하지도 않은가. 우리 조상들은 겨울에 눈이 쌓여 노루가 마을로 먹이를 찾아 내려오면 이 노루에게 건초나 콩깍지 등 먹을 것을 주어 후히 대접한 다음 산으로 보냈다. 본시 수렵에 있어 낚시질로는 고기를 잡아도 벼리 달린 그물로는 고기를 안 잡고 날짐승을 잡음에 있어서도 나는 새는 주살로 쏘되 잠자는 새는 가만히 두는 법이다. 이것이 논어의 조이불망 익불사숙(釣而不網 弋不射宿)이다. 그런데 어찌 한밤중에 서치라이트를 비춰 잠자는 짐승들을 혼비백산하게 하고 그래도 직성이 안 풀려 산째로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목줄기를 따 생피를 마시는가. 무슨 권리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업신여기는 두루미. 그 두루미의 순사를 보라. 두 발로 죽은 짝의 시체를 얼싸 안고 따라 죽은 그 숭고함.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게 부끄럽다는 것을. 그리고 또 우리는 알아야 한다. 순사하는 그 두루미가 인간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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