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장학사

(동양일보)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한 오류 논쟁이 뜨거웠다. 출제 측에서는 수능 문항의 정‧오답 판단 근거가 ‘교과서’이므로 문항 오류가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당시 수험생들이 낸 소송에서도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1년 뒤 오류가 인정되어 판결이 번복되었는데, 이는 시험의 근거를 ‘교과서’로 한정지으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 교육의 경직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필자의 고등학교 수업시간, 대부분의 선생님은 각종 암기비법을 보물단지처럼 전수해 주셨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내용들을 깨알 같은 글씨로 송곳 박을 틈도 없이 빽빽이 받아썼다. 그리고 그것들을 골머리가 아프게 외우며, 참고서나 문제집을 기계적으로 풀어냈다. 그 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최선일까?

이제 우리 교육이 주목해야 할 것은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고교교육 혁신의 출발점에 바로 ‘고교학점제’가 있다.

고교학점제는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운영제도이다. 고교학점제를 통해 우리는 학생 선택권 보장과 참여형 수업,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 진로교육의 내실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가 단위학교에 성공적으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교과목 선택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교 전 학년에 걸쳐 진로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며, 특히,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내실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입시의 유불리 또는 이수 수월성에 따른 교과 선택의 편중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는 교원을 확보해야 한다. 가능한 학교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교원 수급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운영, 지역사회를 활용한 교과목 이수 등으로 제한된 교육 여건을 극복해야 한다. 독일과 캐나다의 경우, 교사들에게 기본적으로 두 개의 학교급 또는 두 개의 전공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고교학점제가 안착되려면, 한 명의 교사가 두 개 이상의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연수를 지원해야 한다.

셋째, 과목 선택과 연계하여 교실수업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목 선택권 보장만으로는 고교학점제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에 재미있게 참여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교실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잠자는 교실’, ‘무너진 교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며,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여 배움이 일어나도록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넷째, 평가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과 학교의 책무성을 높여야 한다. 학점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내신 성적이 절대평가로 산출되기 때문에 학점제가 온전하게 추진될 수 있다. 고교학점제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성취평가제나 과정중심 평가가 중요한데, 여기에는 여전히 평가결과의 변별력이나 신뢰성 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기반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며, 학교에서는 평가문항 및 결과에 대한 질 관리를 통해 책무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레이스 호퍼는 “그간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친 말은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이라고 하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필자는 교육부 ‘고교학점제의 안정적 도입을 위한 2015 개정 교육과정 실행 방안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품은 생각과 그리는 학교의 모습이 새로운 교육정책의 방향이 될 수 있기에 오늘도 가볍지 않은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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