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

 

(동양일보) CEO(chief executive officer)로 불리는 각 회사 최고 경영자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른 아침이면 지역 특급호텔 회의장은 각종 CEO포럼으로 북적이고 있다.

주로 각 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해 지역 유지급 인사들을 불러 모아 진행하는 CEO포럼 열기는 저녁까지 이어지곤 한다.

새벽 포럼에 다녀온 한 CEO는 저녁에 열린 다른 대학 최고위 과정에 등록해 또다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지역 유력인사들의 사교창구로 알려진 최고위 과정은 이제 어느 대학이든 간에 앞 다투어 각종 포럼을 열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불러 모으느라 혈안이 될 정도다.

등록금이라고 정해놓은 수강료는 기간과 내용 측면에서 가성비가 높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선뜻 내놓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각 대학에서 운영 중인 최고위 과정은 CEO와 지역 유지들을 상대로 최고 강사들을 초청해 기업경영과 관련된 특강을 진행한다.

각 회사 경영인들과 지역 유지급 인사들을 상대로 최고 값비싼 시공간(時空間·spacetime)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가끔씩 열리는 골프 모임과 해외여행, 고급스러운 식사를 비롯해 졸업식에서는 고급 앨범도 제작해 수료생들에게 수여된다.

각 대학이 모집해 운영하는 최고위 과정은 비학위 과정이다.

졸업을 했더라도 학위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졸업식에서 수강생들에게 화려한 졸업 가운을 입혀 놓고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진정성 있는 학문을 배우고 겸비해 CEO들이 회사를 잘 이끌어 가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요즘 최고위 과정은 미치지 못함이 더 많다.

순수 학문을 지향하는 대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상아탑(象牙塔)이라는 이름이 볼썽사나울 정도로 각 대학이 적극 나서 세속보다 한 술 더 뜨는 풍경을 연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하기야 내 돈 내고, 내가 즐기고, 내가 받는데 누가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을지도 모른다.

최고위 과정은 대학 최고 수익사업으로 알려지며 경쟁적으로 그 수가 증가해 한때 전국적으로 2000여개나 운영됐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포럼과 최고위 과정 커리큘럼 구성, 원우회 활동 등을 들여다보면 공부보다는 사교가 우선으로 보인다.

열심히 인맥 쌓기에 여념이 없는 그 시간에 회사 부장과 과장 등 하위직 직원들은 회의 준비와 잡무 처리에 분주하다.

정상에서 하산을 앞둔 분들만을 위한 포럼과 최고위 과정이 범람하고 있다.

7~8부 능선에 속한 회사 내 조직 구성원들의 미래를 대비하는 중간관리자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우리는 ‘최고’ 못지않게 ‘특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유래 없이 특별시와 광역시라고 붙인 명칭뿐만 아니라 대학 교과목에 특강이 접미사처럼 붙어 다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특정한 이유가 없고,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강의가 어디 있을까?.

병원의 경우 의사를 지정하면 특진으로 분류해 돈을 더 내게 한다.

특권이 법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니거나, 부여한 범위를 벗어났을 때 특권과 특권층은 문맥으로 미뤄볼 때 보통 나쁜 의미로 쓰인다.

격변의 새 시대에는 수평적 사회집단이 특별한 개인의 수직적 힘을 밀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마냥 최고와 특별에 매달리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사상가로 정치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1469~1527) 어록에는 먹잇감을 포착한 매가 공중에서 하강하는 순간 닭과 병아리는 운영도 모른 채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최고도, 특별도, 학력도, 자격증도, 그 가치가 소멸될 지능정보사회의 입구에 서 있는 우리.

다가오는 시대 속성과 진행 방향을 모른 채 우리는 아직도 ‘최고’라는 레이블을 붙이고 있다.

‘특별’로 덧칠을 해야만 값을 올릴 수 있으니 이 같은 사회·문화가 닭과 병아리 운명을 연상케 한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전승불복 응형무궁(戰勝不復 應形無窮)’이라는 말이 있다.

어제 방식으로는 내일 전쟁에서 다시 이기기 어려우니, 새로운 상황에 다른 전법으로 대응하라는 뜻이다.

말을 잘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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