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동양일보)

힘이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힘이 센 사람이 이긴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키웁니다. 가깝게는 완력부터 학력, 재력, 명예, 권력에 이르기까지 상대를 제압할 힘을 얻기 위해 열중한다. 강할 때 무시 받지 않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자연 상태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이 헛말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을 가리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한다. 이 말에는 불가능하니 처음부터 포기하거나 체념하라는 약자의 자포자기(自暴自棄) 의식과 강자의 오만함이 깔려 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3,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양치기 소년이 돌팔매질 하나로 위대한 거인 전사를 쓰러뜨렸다. 이 이야기는 이후 ‘골리앗과 다윗의 전투’로 불리며 강자에 대항한 약자의 위대한 승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속 얘기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던 로마제국도 북쪽의 야만인 게르만족에 의해 무너졌고,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도 이민자들이 세운 신생국가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후 쇠락의 길을 걷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다윗의 반란을 증명하고 있다. 역사학자 이반 아레귄-토프트(Ivan Arreguin-Toft)의 연구에 의하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투에서 약소국이 이길 확률은 28.5%라고 한다. 그런데 베트남의 게릴라전처럼 강대국의 룰을 따르지 않고 다르게 접근한 전투에서 약소국의 승률이 63.6%까리 올라간다고 한다. 약하다고 항상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자의 반란을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스포츠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언더독(under dog)의 반란이라는 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체급이 비슷한 선수나 전력이 비슷한 팀끼리 대결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에 부합되지만 간혹 전력상 차이가 나는 두 팀이 대결을 버리는 경우가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전 대회 우승팀인 독일을 꺾은 것이 좋은 사례이다. 세계 최장 독일을 상대로 불꽃 선방을 한 골키퍼 조현우와 후반 51분 추가골을 넣은 손흥민은 세계 소셜 미디어를 들썩였다. 이러한 언더독들의 반란이 없다면 스포츠를 볼 이유가 있을까?

스포츠계보다도 약자의 반란이 보다 빈번히 일어나는 곳은 경제분야이다. 미국 대기업 상위 500개사 중 과반수가 15년 이내에 사라진다고 한다. 미국에서 최근 15년 동안 사라진 대기업으로는 컴팩, 코닥, 블록버스터, 폴라로이드 등으로 모두 한 때 미국에서 정상까지 올라갔던 대기업들이다. 1955년 포춘 500에 든 기업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회사는 60개사 밖에 안 된다.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은 모두 상대적으로 신생기업이다. 이들도 언제가 어떤 허름한 창고에서 창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스타트 기업가에게 그들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 모른다.

어떻게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을까? 『다윗과 골리앗: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란 책을 출간한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은 때때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약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가르치고 일깨우며,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이 아니라 상처 받은 다윗에 의해 발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강함’은 완력, 학력, 재력, 명예, 권력과 같은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약함’의 원인이 되는 약점과 역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과 역경을 극복하려는 자기혁신과 헌신 속에 골리앗을 쓰러뜨릴 묘안이 숨어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강함’의 상징인 권력과 재력은 잘못 사용하면 정당성의 문제의 낳고 순응보다는 오히려 저항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약함’ 속에 숨겨진 큰 능력을 어떻게 발굴할 것이냐는 각자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오늘의 어려움이 내일의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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