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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 무작정 떠나기
동양에세이/ 무작정 떠나기
  • 동양일보
  • 승인 2019.05.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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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장학사
한인경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장학사>

(동양일보) 나는 툭하면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불량 엄마이다. 전문직이 되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그래도 나의 일을 적극 지원하고 지지해주는 남편과 친정 부모님이 계시고,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곳에 발령을 받은 덕에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저녁 시간 남편과의 통화 중 휴대전화 너머로 도대체 엄마는 언제 퇴근하냐며 또 야근이냐는 막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들과 야심차게 남편 없이 여자들끼리의 여행 계획을 세워 보았다.

야심차게 계획한 날짜가 다가오지만 좀처럼 휴가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체험학습 신청서를 두 번이나 다시 제출했다. 이런 저런 사정을 살피다가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금요일 밤 12시에 부산가는 KTX와 숙소를 예매하고,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깨우고 서둘러 짐을 챙겨 오송역으로 달려갔다. 부산 가서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어떤 계획도 없었다.

기차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 해 보았다. 모래놀이를 맘껏 하고 싶다는 셋째, 직업 체험 테마파크를 가고 싶다는 둘째, 벽화 마을을 가고 싶은 첫째,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부산은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주말 내내 비가 올 예정이었다. 남편없이 아이들과 모래놀이도 벽화 마을 둘러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 맞는 게 싫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해운대 앞 전통시장에서 부산 어묵, 씨앗호떡, 떡볶이 등으로 아이들의 배를 든든히 채우고, 왠지 근사해 보이는 흑백 사진관으로 들어갔다. 막내 돌 이후로는 사진관 방문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없지만 우리끼리 예쁘게 사진 찍자고 여자 넷이 사진을 찍었다. 넷이서도 찍고, 셋이서도 찍고, 둘이서도 찍어보았다. 첫째와 둘째가 어깨동무하는 걸 주춤하더니, 사진사의 농담에 금세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깔깔대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우리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흑백 사진 속 아이들을 보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마웠다.

부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바로 사진 촬영이었다. 사진관은 청주에도 있고, 늘 휴대 전화로 아이들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지만 부산에서의 사진 촬영은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여행 계획을 촘촘히 세웠다면, 부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사진 촬영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늘 방학이면 아이들과 휴가 계획을 촘촘히 세우느라 부담이었다. 좀 더 알찬 여행을 하고자 다양한 여행지의 정보를 수집하고, 여행지가 선택되면 그 때부터 여행 코스, 숙소, 음식점 등을 정하느라 여행을 가기도 전에 스트레스가 엄청 났었다. 그러나, 무작정 떠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여유 있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부산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7월에도 여행을 가자고 했다. 7월에도 무작정 떠날 것이다. 무작정 떠나도, 하루 이틀쯤 사무실을 비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에겐 무작정 떠날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7월이 벌써 기대된다. 6월을 열심히 살고 여유 있는 7월을 만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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