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동양일보) 요즘 한글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하여 줄임말이 넘치다 보니 신구세대간의 언어의 장벽도 생기고 기성세대가 바라볼 대 젊은이들을 욕하기도 한다. 시쳇말로 “싸가지가 없다”고 한다. 싸가지는 본디 뜻은 나쁜 말은 아니다. 싹수라는 의미가 속에 담겨 있으며 강원도 방언으로 싹아지라고 하며 비속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보면 거칠고 도발적이고 반항적이며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표면적 모습을 보고 싸가지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휴 싸가지 참 많다!”라고 해도 결코 좋은 표현은 아니다.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는 사람은 사귀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 만큼 처세술과 암계(暗計) 및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밝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청소년에게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나 제갈공명의 전술보다는 인생에서 필요한 인성과 인내심을 배우라고 충고하고 싶다. 따라서 오늘은 사람으로서 사람 냄새나는 사람다움을 갖추는 인성(人性)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우리가 말하는 싸가지는 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의 방언(강원, 전남)이다. 싹이라는 말에 작은 것을 뜻하는 접미사 ~아지가 붙어 싹아지가 되었고 이것이 변하여 싸가지 이다. 원래 막 움트기 시작한 싹의 첫머리를 가리키던 말이 일상에서 비유적으로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씨앗은 식물이 수정한 후 씨방이 자라서 생기는 것이며 관련된 속담으로 “열매가 익다”는 노력한 일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고 “열매 될 꽃은 첫 삼월부터 안다”는 잘될 일은 처음 그 기미부터 좋음을 이르는 말이다. 열매는 나무 등에서 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사과 배 감 귤 바나나 도토리 참나무 등이 있다.

싸가지를 약하게 사가지로 읽기도 한다. 이를 비유한 말로 “이런 사가지가 바가지 같은~ ”이 있다. 사가지를 인(仁) 의(義) 예(禮)지(智) 4개로 비유하며 예절에 견주고 사가지가 없는 것을 예의나 버릇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싸가지는 씨앗에서 유래된 말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가능태(可能態)라 하였고, 씨앗에는 씨눈이 있고 씨눈에는 적정한 환경이 갖춰지면 발아(發芽)하고 성장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씨앗의 원형(原形)은 기본적인 바탕으로서의 유전형질이 내재되어 있어 일정한 과정을 거치고 성숙하면 결실을 맺으며 무한한 가능성의 성장력을 갖는다. 여기에 제반 환경이 갖추어진 후에 현실태(現實態)어 가능성과 성장의 척도가 된다.

공자는 논어의 “자한(子罕)”에서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苗而不秀者有矣夫), 꽃은 피었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秀而不實者有矣夫!)"고 하였는데, 여기서 묘이불수(苗而不秀)는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고 수이불실(秀而不實)은 싹수가 노랗다는 것이다. 이는 건강한 싹을 기대 하지만 대를 올려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핀 꽃이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지만 결실 없는 쭉정이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싸가지는 미래를 판단하는 의미이며 곡식도 싸가지가 있어야 하고 사람도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논에서 김매는 것은 논의 잡초인 피를 뽑는 것으로 열심히 김을 매면 논에 이삭이 핀다. 이삭은 한자로 수(穗) 또는 영(穎)이고 수(秀)는 이삭이 피어 꽃이 되는 것으로 추수의 커다란 결실로 보람을 준다. 여기에서 유래된 수재(秀才)는 매우 뛰어난 인재를 말한다.

화단의 예쁜 화초 중 풀과 나무로 갈리는 목단(牧丹, 모란)을 작약과 함께 키우면 아주 예쁜 진분홍의 싸가지를 볼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싸가지가 건강하고 튼튼해야 가능성이나 희망이 보인다는 뜻이다. “싹수가 노랗다”도 싸가지가 없는 것처럼 켜봐야 소용이 없고 장래가 없다는 뜻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싸가지가 중요하며 천체만물은 싸가지가 좋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교육이 성장과정에 매우 중요하며 인간교육의 싹수로 인성을 중시해야 한다. 공자께서도 인간교육의 씨앗은 인(仁)이며 사람의 기본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인간 쭉정이 같은 허릅숭이로 사는 것은 금수(禽獸)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사람을 보면 인사(人事)를 해야 하며 본디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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